당근마켓을 둘러보던 중 먹태깡을 판다는 글을 발견했다. 웃돈을 얹어가며 팔고 사는 먹태깡을 보고 오래된 기억 속의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10년 전 대한민국을 전례 없이 뒤흔들었던 과자 허니버터칩. 한 봉지 손에 넣으면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것은 필수였고 시식후기를 주변에 맘껏 자랑할 수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감자칩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아침 일찍 오픈런을 했고 본사 생산공장을 찾아가는 경우까지 있었다. 동네 마트와 편의점은 허니버터칩 입고 소식을 문 앞에 붙여 광고했고 심지어 인기 없는 재고상품을 끼워 팔기까지 했다.
욕망과 상술 그리고 사람들의 호기심이 얽혀 헛웃음 나오는 촌극을 만들어냈다. 극한의 예매 난이도를 자랑했던 인터스텔라 아이맥스판을 보면서 허니버터칩을 먹으면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농담까지 돌았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먹태깡도 리셀가가 치솟으며 사람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 봉지에 6천 원을 호가하는 가격임에도 당근마켓의 판매글에는 판매완료 딱지가 붙어있었다. 득템 했다는 만족감을 몇천 원에 느낄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행동이 다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상식적일 필요는 없다.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마냥 비난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양자 모두가 만족한다면 거래는 정당한 것이다. 덩크 열풍이 뜨거웠던 코로나 시즌. 크림에서 한 켤레에 30만 원대를 웃돌던 클론템 나이키 돌고래도 이와 비슷했다. 웃돈을 얹어가며 남들 따라가려는 행태를 비아냥대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패션에 있어서 선택과 표현은 모두 자유를 보장받는다. 취향의 영역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수요와 공급에 맞춰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유 없는 거래는 없다. 원하는 자는 지불하고 원하지 않는다면 지나가면 그만이다.
인간의 부끄러움과 부러움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전차는 늘 시끄럽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남들만큼 가지려고 애를 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다 간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사람들을 보고 일일이 불편함을 늘어놓지 말고 지나치는 쪽이 좋다. 모두에게 취향과 주관이 있으므로 삶의 형태는 무수하게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낸다. 그중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냥 지나간다. 먹태깡을 6,7천 원 주고 사 먹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 먹고 싶으면 궁금하면 그럴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