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브랜드

by 김태민

마이크로 브랜드 워치는 취향집합소다. 오마주라는 이름으로 시계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요소를 모조리 집어넣는다. 호불호 없는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디자인, 단단한 사파이어 글라스, AR코팅으로 빛반사는 없애고 세라믹 베젤로 광택감을 더한다. 다이얼 컬러는 해리티지와 빈티지를 반영해서 클래식함을 살리고 무브먼트는 ETA로 신뢰성을 더한다. 사치스러운 디자인의 문페이즈를 더하거나 수천만 원대 하이엔드 워치에 들어가는 운석 다이얼을 고를 수도 있다. 마이크로브랜드의 시계는 적게는 수십만 원 넉넉하게 잡아도 백만 원 안쪽으로 로망을 실현할 수 있다. 현실적인 예산안에서 매력적인 요소와 전통적인 감성을 살린 드림워치를 간접경험하는 것이다.


중형차 값과 맞먹는 시계를 손목에 찰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서브마리너나 요트마스터를 동경하지만 결코 이미테이션은 사지 않는 양심. 흔하디 흔한 양산형 시계는 차지 않는다는 결심. 고집과 아집 사이의 확고한 자존심이 작용한 결과 마이크로브랜드를 선택하게 된다.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오마주한 슈타인하트를 매일 차고 다녔고 필드워치로 우드페커를 애용한 적도 있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법 괜찮은 옵션을 자랑하는 중국제 산마틴이나 포이보스 다이버를 사본 적도 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구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계를 전부 방출해 버렸기 때문이다.


로망을 싣고 있는 마이크로브랜드 워치는 결국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았다. 호박은 수박이 될 수 없다. 짜장면을 먹고 싶을 때 짜파게티를 한 입 먹는다고 만족감을 얻을 수는 없다. 잠깐 충족된 만족감은 스스로의 욕망을 속이는 것에 불과했다. 오리지널이 갖고 있는 가치와 상징성은 고유한 것이다. 대체될 수도 없고 교체되지도 않는다. 욕망의 표적은 사라지기 전까지 변하지 않는다. 타협점을 찾는 방법을 가품을 사는 것이나 대체품을 손에 넣는 것이나 비슷하다. 짧은 시간 충족된 만족감은 빠르게 식어버리고 이내 싫증이 몰려온다. 그래서 마이크로 브랜드 시계는 새것처럼 상태 좋은 중고매물이 많다.


욕망은 가장 솔직한 감정 중 하나다. 자신을 속이는 것이 제일 어렵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동경하는 일은 피로감을 동반했다. 동시에 주머니 사정에 걸맞은 물건이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집했던 시계를 모두 정리하고 3만 원을 주고 산 카시오 전자시계를 차고 다닌다. 사용하면 할수록 마음에 들었다. 무게는 가볍고 모양새는 깔끔하고 잔고장 없이 튼튼했다. 이거면 충분하다. 손목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욕망을 수집하는 일은 내게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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