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인데 날씨는 벌써 여름이다. 밥을 먹다 거실 벽에 붙어있는 바구미를 발견했다. 30년 넘은 오래된 연립주택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벌레들이다. 봄이 되면 바구미가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낸다. 집안 깊숙한 곳 어딘가에 알을 까고 나면 가끔씩 애벌레가 튀어나온다. 천장에 붙어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노란 애벌레에 익숙해졌다. 한 마리씩 떼내서 창 밖으로 던진다. 해외에 거주하는 지인들이 벌레가 많다고 토로할 때면 우리 집에서 하루만 살아보게 만들고 싶다. 밤마다 바퀴벌레가 벽지 사이를 돌아다니며 만들어내는 음산한 소음을 듣자마자 기겁할 것이다.
누렇게 뜬 벽지와 누수로 얼룩진 천장에 곰팡이가 슬었다. 긁어내고 소독약을 뿌리고 그 위로 여러 번 벽지를 덮어도 소용없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아픈 것처럼 집도 마찬가지다. 40년이면 아파트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두 번 하고도 남았을만한 시간이다. 이만큼 버티고 있는 것이 대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빨간 벽돌로 지은 낡은 연립주택은 벌레가 살기 정말 좋은 환경이다. 시멘트가 갈라진 틈에 말벌이 벌집을 짓는다. 한 번씩 초여름이 되면 막대기로 작은 말벌집을 부수곤 했다. 벽 내부에 단열재가 들어있지 않아서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 결로가 생기고 습기가 들어차는 실내환경은 벌레 입장에서 지상낙원이다. 돈벌레를 사계절 내내 본다.
습기를 좋아하는 거미는 이제 친구처럼 친근해졌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우리 가족은 거미와 함께 살았다. 스파이더맨은 사람들의 친구지만 나는 거미들의 친구다. 피터 파커는 한 번 물렸을 뿐이지만 나는 거미랑 평생 함께 살았다. 구석에서 갑자기 기어 나오는 거미를 봐도 죽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잡아서 집 밖에 놓아준다. 옥상과 대문 여기저기에 진을 치는 호랑거미는 잡아다 공원에 풀어준다. 책상 위를 지나가는 깨알만 한 새끼거미는 모른 척 놔둔다. 돌아다니는 모습은 징그럽지만 거미는 익충이다. 여러 해충을 잡아먹으면서 내가 할 일을 덜어준다.
우리 집은 명학공원이 바로 앞에 있어서 철쭉 필 무렵이 되면 꿀벌이 많이 날아다닌다. 꿀벌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처럼 말벌이 따라붙는다. 대문 앞을 서성이는 말벌을 보고 놀란 적도 있다. 말벌은 보이면 지체 없이 바로 죽인다. 가족들이 벌에 쏘이면 큰일이다. 전기모기채를 휘둘러서 바닥에 내려친 다음 발로 두 번 이상 밟는다. 갑피가 단단해서 적어도 두 번은 밟아야 한다. 몸통에 두 발을 쏜 후에 이마에 총알을 박아 넣는 모잠비크 드릴 같은 교전수칙이다. 숨통을 확실하게 끊어야 한다. 방심하면 역공을 당한다.
3월부터 12월까지 모기를 잡는다. 올해는 3월 초에 첫 모기를 잡았다. 방충망이 낡아서 유격이 생기고 틈새가 벌어졌다. 다이소에서 산 접착식 방충망을 덧붙였지만 효과가 없었다. 폭염이 40도 가까운 폭염이 몇 년간 이어지고 있어서일까? 한여름철에는 모기가 적은 편이다. 하루에 4,50마리쯤 잡는다. 그러다 늦더위가 길기에 이러지는 가을이 오면 100마리 넘게 잡는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줬더니 거짓말 좀 하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 그래서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줬다. 휴지에 수북하게 쌓인 150마리가 넘는 모기를 보고 친구는 할 말을 잃었다. 오래된 동네라 애초에 벌레가 많은 데다 공원에 물웅덩이도 있다. 모기가 살기에 이만큼 좋은 곳도 없다.
초여름에는 방충망에 노린재가 날아와 붙는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대지 않으면 하루종일 들어붙어있다. 한여름이 되면 같은 자리에 매미가 전세를 낸다. 가을이 오면 모기가 기승을 부리고 겨울은 그리마와 쥐며느리가 튀어나온다. 사계절 내내 벌레들은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곤충이나 사람이나 환경에 적응한다. 자연에서 살던 생물들이 낡은 연립주택 속으로 파고든 것도 일종의 적응이다. 익숙해지면 불편함 속에서도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살충제를 뿌리고 계절마다 약을 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