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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Apr 10. 2024

반차

 늦은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에 뜬 친구 이름을 확인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반차 쓰고 나온 친구와 같이 동네 쌈밥 집에 갔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식당은 텅 비어있었다. 손님은 우리 둘 뿐이었다. 제육볶음 2인분을 주문했다. 반찬과 공깃밥이 나오자마자 빠르게 숟가락을 놀렸다. 오랜만에 친구랑 밖에 나와서 먹는 밥이라 맛있었다. 급하게 선택한 메뉴치고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명학공원을 돌아다녔다. 하늘은 흐린 편이었지만 새하얗게 만개한 벚꽃이 정말 예뻤다.


 산책하는 사람들과 뛰어노는 아이들, 벤치에 앉아 꽃구경을 즐기는 어르신들 모두 느긋해 보였다. 여러 각도로 핸드폰 기울여가며 사진을 찍는 친구도 즐거워 보였다. 평일 오후의 사무실을 나오기만 해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사실 365일은 매일매일이 휴일이다. 일을 하느라 일상에 매여있을 뿐. 무라카미 하루키는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은 돈으로 시간을 샀다고 이야기했다. 비싼 집이나 차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를 얻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인세수입만 가지고도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유명작가도 결국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하루키의 말은 멋은 있지만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 그런  같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삶은 극소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시간과 돈을 교환한다. 일하지 않으면 당장 밥을 굶는다. 생계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즐기려면 일단 하루 세끼 먹고살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꽃은 예쁘지만 배를 채워주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생활 위에 존재할  없다. 굶으면 글도 그림도  나온다. 창의력은 가슴과 머리가 아니라 든든한 위장에서 나온다. 누구나 본인이 걸어온 길에 익숙해진다. 일상이 오래 반복되다 보면 생활이 된다. 가치관과 사고방식도 생활에 물든다.


 친구는 핸드폰을 자주 확인했다. 카톡을 사용하면서부터 일과 생활의 구분선은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 반차를 써도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로그아웃 할 수는 없다. 결국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넣어 버렸다. 남자 둘이서 궁상맞게 꽃구경을 하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평일 오후의 카페만큼 여유로운 곳이 또 있을까? 젊은 주부와 동네 아줌마들이 빠져나가서 그런지 카페는 한산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우리는 창 밖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가만히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시시콜콜한 잡담을 주고받으며 열심히 시간을 낭비했다. 시간을 쪼개서 살라는 말이나 분단위로 움직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낭비를 죄악으로 여긴다. 삶은 어차피 한 번뿐이다. 완벽한 정답이나 오답은 없다. 여유와 낭비는 관점의 차이일 뿐 형식은 동일하다 쉴 때는 그냥 쉬면서 시간을 철저하게 낭비하는 쪽을 선호한다. 어차피 경제적 자유 따위는 환상에 불과하므로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 한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엔진을 잠시 끈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쓸데없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친구와 나는 계속해서 웃었다.


 서점에 가면 매대마다 잔뜩 쌓여있는 자기 계발서를   있다. 인스타그램을 열면 동기부여를 주제로  게시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책팔이들의 영역이었던 성공학은 어느새 학문의 지위를 얻었다. 유명한 걸로 유명한 사람들은 성공을 자랑하면서 돈을 번다. 쉬지 말라고 강조하고 치열하게  것을 강요한다. 정작 그러다 번아웃이나 우울감에 빠지면 그들은 외면한다. 시간은 성취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맘대로 쓰라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일하고 인간관계를 이어나가느라 피곤한데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 신도 세상을 창조하고 하루를 통으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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