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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n 04. 2024

아담 샌들러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채널을 돌리다 아담 샌들러가 나오는 <미스터 디즈>를 봤다. 나온 지 20년을 훌쩍 넘긴 영화라 그런지 2000년대 특유의 때깔을 느낄 수 있었다. 피자가게를 운영하다 삼촌의 유산을 상속받아 부자가 된 남자의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적당히 흥미로웠다. 그 시절 영화들은 늘 이런 식이었다. 적당히 무섭고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자극적이었다. 유튜브와 SNS가 등장하기 전의 세상은 그런 류의 적당함이 존재했다. 이런 분위기가 아담 샌들러와 참 잘 어울렸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애잔함과 약간 능글맞은 익살스러움이 깃든 얼굴이라 그랬던 것일까?


 아담 샌들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눈을 살짝 찡그린 채 입을 살짝 벌린 표정이다. 햇살을 피하기 위해 가늘게 뜬 눈과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는 감정을 담은 입술. 어벙함과 난감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사라진다. 영화를 보면서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를 아예 그만두게 된다. 그의 얼굴은 재미가 없어도 일단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완성도나 연기력에 관한 평론가들의 평가는 낮지만 아담 샌들러 영화는 대체로 흥행하는 편이다. 별생각 없이 영화를 보게 만드는 흡인력 가진 배우다.


 솔직하게 말해서 아담 샌들러가 주연으로 나오는 대부분의 영화는 스토리나 완성도가 좀 부실한 편이다. 하지만 보고 나서 기분이 나빴던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골든라즈베리 상을 받았던 <잭앤질>을 제외하면 대체로 그럭저럭 볼만했다. 왠지 모르게 보고 있으면 힘 빠지는 얼굴 역시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는 힘을 갖고 있다. 웃음만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냥 편하게 머리를 비우고 볼 수 있는 영화가 주는 매력이 있다. 온몸에 힘을 빼고 소파에 축 늘어진 채로 누워서 봐도 좋은 그런 영화. 아담 샌들러는 그런 장르에 최적화된 배우다.  


 걱정과 고민을 끌어안고 살다 보면 긴장이 그림자처럼 달라붙는다. 긴장감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마저 피곤하게 느껴질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아담 샌들러가 나오는 영화를 본다. 힘 빠지는 표정으로 웃는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이 편해진다. 친근함인지 편안함인지 분류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가슴속을 물들인다. 박장대소할 만한 장면은 없지만 한 번씩 피식거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미스터 디즈>는 전개도 결말도 엉성하지만 괜찮은 영화다. 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안해지는 영화였다.


  좋은 영화나 나쁜 영화를 구분하는 기준은 취향일 뿐이다. 완성도라는 표현만큼 주관적인 말이 있을까? 아카데미 수상작 중에서 웃다가 눈물  만큼 유쾌한 작품을  적이 없다.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이나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영화들은 대체로 주제가 심오하다. 그래서 어렵다. 철학적 성찰이 돋보이는 마스터피스라고 해서 인정하고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평론가들의 별점도 결국 개인적인 취향에 지나지 않는다. 평론가들의 평가는 야박해도 아담 샌들러 영화는 대체로 흥행한다. 영화를   심오한 깨달음보다 산뜻한 즐거움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법이다.


  어려운 영화보다 머릿속을 비우고 편안한 마음으로 코미디를 보고 싶을 때가 훨씬  많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바쁘게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지쳐버린다. 남들처럼 사는 것도 힘들고 남들만큼 사는 것도 어렵다. 걱정이나 고민을 웃음과 함께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코미디 영화를 본다. 엉성한 스토리와 클리셰 가득한 뻔한 전개지만 즐겁게 웃다 보면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며칠 고민하느라 소란스러웠던 내면의 잡음이 조용하게 잦아들었다. 아담 샌들러의 어벙한 미소  얼굴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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