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않는 사회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

by 김태민

한국 사회에서 법의 기능은 또렷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법은 사회적인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는 원칙으로서 활용되기도 하지만 영향력 있는 개인의 사익을 추구하는데 악용되기도 한다. 적어도 최근 한 달간 국민적인 분노와 탄식을 불러일으킨 사건과 엮어서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의 법은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보다 반칙을 일삼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법은 약속이다. 국가와 이를 구성하는 국민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근본적인 약속이다. 그러나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큰 성공을 거두고 법을 수호해야할 위치에 있는 이들이 법을 악용하는 현실을 보면 과연 어느 누가 제대로 법을 지키려고 할까?

무엇보다도 초법적인 권력을 가진 특권층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법으로 대변되는 정의는 우리 사회에서 그 가치를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권력자의 비호를 받아 불법적인 방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국가 정책이라는 법률적인 수단을 동원해 군림한 특권층. 이들의 존재가 드러난 이상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국의 헌법은 특권층의 존재를 부정한다. 국가의 통치 질서인 법 중에서도 최상위 법인 헌법이 영향력을 부정당한 상황에 과연 정의가 존재할 수 있을까. 신뢰가 무너지고 정의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사회는 불법과 편법이 성공의 수단으로 득세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의 구성원인 국민들은 사회에 대한 기대감을 상실하게 된다.

노력의 가치가 부정당하고 개인의 역량이 아닌 특정인과의 연줄이 성공의 여부를 결정짓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과연 더 나은 삶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성실하게 법을 지키며 사회적인 의무를 수행해온 대다수의 국민들은 최근 한국 사회의 부패성을 목격하면서 극심한 분노와 더불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노력이 경제력이라는 출발선의 격차를 메울 수 없고 검증된 능력이 출신성분 앞에서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을 모두가 목격한 이상 ‘더 나은 삶’을 기대하는 행위는 무의미해져버렸다. 땀 흘리며 살아온 삶의 가치와 신념이 전면적으로 부정당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제 점차 기대감을 상실해나갈 것이다. 국가에 대한 신뢰와 법치주의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가는 상황을 볼 때 이는 근거 없는 비약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삶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결혼은 점점 줄어들고 다음 세대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장이 불투명하므로 출산과 육아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안정적인 노후에 대한 기대감은 찾아볼 수 없고 경제적인 불안감만 가중되므로 건전한 투자가 아닌 한 방을 노리는 투기만 늘어날 것이다. 정직한 수익을 기대하기보다 편법적인 방법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경제적인 투명성은 악화될 것이고 땀의 가치보다 요행을 바라는 욕망이 당연시 되는 사회가 된다고 하면 지나친 망상일까?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본다면 망상으로 치부하기만은 어려울 듯싶다.

소득과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됨에 따라 사회 발전의 동력인 젊은 세대는 모험대신 안정과 생존을 선택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의 변화는 앞으로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암울한 사회를 전반적으로 개혁할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국가는 시스템에 최적화된 엘리트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엘리트만이 시스템의 중심에서 권리를 보장받고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회적인 패자가 되어 안전선 밖으로 밀려난다. 불안한 사회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성원들은 서로를 짓밟고 배척하게 되면서 갈등은 가속화된다. 그리고 사회적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 만큼 패자로 전락한 절대 다수인 국민들은 지속적으로 권리를 빼앗기게 된다. 국민이 통치의 근본이 아니라 통치의 대상이 되는 이상 권리는 축소될 수 밖에 없다. 의무만 주어지고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면 국민은 권력 선출과정에서의 거수기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균등하게 적용되고 평등하게 보장받아야할 사회적인 원칙과 권리는 국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꿈꾸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러한 원동력이 상실된 우리 사회는 앞으로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잃어버린 긍지와 자존감 그리고 국가에 대한 신뢰는 대체 될 수 없는 고유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기대감을 상실한 국민들이 사는 국가의 미래는 어둡다. 혼란스런 정국이 진정되고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쇄신이 이뤄진다고 해서 국민들이 느낀 박탈감과 상실감 그리고 분노가 치유될 수 는 없다. 무엇보다 비리를 단죄해야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텐데 과연 개혁의 칼자루를 쥐게 될 이들은 비리로부터 자유로운 깨끗한 사람들일지 걱정된다. 뉴스를 볼 때마다 차오르는 무기력을 요즘은 이겨내기가 힘들다.


*첨부그림
법의 얼굴, 17 x 25cm, 카드보드에 오일파스텔,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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