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에서 나온 이야기

by 김태민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무심코 발 밑을 내려다봤다. 보도블록 끄트머리에 음각으로 새겨진 발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양생 중인 콘크리트를 까치나 비둘기가 밟고 지나간 자국이다. 선명하게 찍혀 있는 발모양은 꼭 화석 같았다. 공룡발자국이 남아있는 해안가 암석지대의 화석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낯선 흔적을 발견할 때면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어제는 도서관에서 책을 찾다 포켓몬스티커를 발견했다. 엄마 손잡고 도서관을 따라온 아이가 장난 삼아 스티커를 붙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새들이 남기고 간 발자국을 유심히 보면서 스토리를 생각해 봤다. 아마도 횡단보도 근처 가로수에 앉아있다가 벌레를 잡으려고 내려오지 않았을까? 군데군데 작은 점처럼 찍혀있는 콩알만 한 다각형은 부리로 쫀 흔적 같았다. 발자국은 좁은 간격으로 이어지다 멀리 뛰기를 하듯 크게 벌어졌다. 콘크리트 가장자리에 보이는 발자국이 다른 것에 비해 조금 더 깊게 들어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도약을 하듯이 지면을 차고 하늘로 날아갔을 것이다. 본 적 없는 풍경을 눈앞에서 본 것처럼 머리로 상상해 본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전부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중고매장에서 산 티셔츠를 소재로 <토니 타키타니>라는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을 토대로 이치카와 준은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 평범한 일상이 상상을 만나서 예술이 된 좋은 사례다. 예술은 화려한 작업실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탄생한다. 상상은 흘려보내면 금세 휘발되지만 글로 쓰면 기록이 된다. 기록이 모이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차곡차곡 쌓인 일기는 자서전이 되고 틈틈이 쓴 메모를 엮어서 책으로 출간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술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새들이 콘크리트에 남기고 간 발자국을 못 보고 지나쳤다면 이 에세이를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늘 우연에서 비롯된다. 책이나 영화를 볼 때면 작가들이 영감을 얻게 된 순간이 궁금해진다. 인터뷰나 후일담을 찾아보면 우연한 계기로 작품을 만들게 됐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냥 생각나서 쓰다 보니 완성하게 됐다는 케이스가 생각보다 흔한 것 같다. 참신한 영감보다 평범한 상상이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 흔한 일상을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면 특별하게 변한다. 시각의 차이가 관점의 차이를 만든다. 보는 눈이 달라지면 보이는 세상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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