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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05. 2017

착각은 언제나 새드엔딩

지갑, 물고기 그리고 창고


 지갑, 물고기, 창고. 연관성이나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세 단어는 남녀관계에 있어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의 유형을 분류하는 나만의 표현이다. 중고등학교 동창부터 대학동기, 직장동료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사람 자체만 놓고 보면 정말 진국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남자들이었으나 연애와 관련해서는 너무나 뚜렷한 본인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나 충고가 전혀 먹혀들지 않는 아주 단단한 신념 내지는 고집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포함한 주위의 지인들은 그들의 고집을 착각이라고 불렀다. 남자의 굳은 신념은 올바른 방향으로 뻗어나갈 때는 한없이 매력적이지만 방향을 잘못 잡았을 때는 정말 답답하고 미련해보이게 만드는 특징을 갖고 있다.
  
 착각은 그런 점에서 괜찮은 남자를 미련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미련한 행동을 두고 사람들은 호구라는 말을 한다. 그들은 본인만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착각을 통해 감정을 이해하고 해석해서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다.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본다면 ‘호의를 호감으로 착각하면 호구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에게도 할 말은 있다. 나름의 근거도 있고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을 수 있는 조금은 미심쩍지만 그럴 수 도 있겠다 싶은 이유도 있다. 그러나 제3자의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들의 근거는 일방적인 자신만의 느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게 된다. 그 사실을 넌지시 일러주거나 차근차근 설명해서 전달해주어도 별 소용은 없다. 사실 타인의 연애나 남녀관계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첨언과 조언을 할 뿐이다. 상대가 듣지 않으려고 한다면 덧붙이던 말은 끝내고 했던 말은 거둬들인 후에 잘 되길 바란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짓는다. 
  
 그래서 착각으로 연애를 하는 친구나 지인을 둔 사람들은 그들의 연애상담이나 한탄을 때가 되면 찾아오는 연례행사처럼 생각하게 된다. 무슨 말을 해줘도 본인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니 알아들을 턱이 없다. 괜한 말을 덧붙였다가 친구 사이에 안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라며 다독이거나 마냥 힘내라는 말만을 해줄 뿐이다. 연애와 관련해서 호구라는 소리를 들었던 지인들을 옆에서 보며 처음에는 조언을 나중에는 응원을 보냈던 나는 그들의 레퍼토리를 통해 일종의 유형이 있음을 알았다. 지갑과 물고기 그리고 창고라는 분류법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갑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첫 번째 유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지갑은 성실하게 자신의 마음과 호의를 물질적인 수단을 통해 충실히 전달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일방적인 선물공세와 비용을 부담하는 호의는 상대방에게 부담을 느끼게 한다. 도에 지나친 호의는 받은 만큼은 아니라도 그에 준하는 성의를 보여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든다. 편안함을 느껴야 사람을 알아갈 수 있는데 시작부터 부담스러운 인상을 받게 되면 만나는 일이 꺼려지기 마련이다. 적절한 선에서는 매너와 호의로 보일 수 있지만 선을 넘기게 되면 ‘내가 뭘 해줘야하는 건가. 나에게 뭘 바라고 이렇게 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는 남녀 모두에게 해당된다. 잘 해주는 것과 잘 사주는 것은 절대 같은 것이 아니다. 
  
 첫 번째 유형이 일방적으로 선물공세를 펴는 타입이라면 두 번째는 그에 비해선 소통을 조금 더 하는 편이다. 다만 합리적인 판단이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보지 못할 뿐이다. 왜냐면 물고기라 불리는 그들은 어장 안에 갇혀있는 관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어장관리 당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 필요이상의 큰 의미를 부여한다. 상대의 말과 행동이 자신만을 위한 배려와 관심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들리지 않는다. 애초에 그게 자신만의 착각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면 어장 안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테니까. 
  
 여자의 말과 행동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것이 단순한 감정이든 긍정적인 호감이든 아니면 치밀한 계산이든 의미가 숨어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정말 가까운 혹은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면 굳이 해석해야할 만큼 깊은 메시지가 들어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남자가 아니라 생물학적 이성에게 건네는 여자의 말과 행동은 의사소통을 위한 기능 외에 전혀 다른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어장 안을 헤엄치는 그들은 아무 의미 없는 문장과 행위에 자신만의 의미를 덧붙이는 실수를 저지른다. 착각이 실수를 낳고 실수는 주변 지인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될 흑역사가 되어 돌아온다. 
  
 앞서 본 두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주변 지인들의 말을 무시하면서도 본인도 조금은 ‘내가 설마?!’ 하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유형은 조금 특별하다. 이들은 절대로 스스로 착각에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확실한 상대방의 마음이 깃든 증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말해준 비밀과 이야기. 이들은 상대방의 처리할 곳 없는 감정들을 잔뜩 던져 놓은 감정의 저장고다. 사물함이 아니라 창고인 이유는 간단하다. 사물함에 넣어둔 것들은 때가 되면 찾아간다. 그러나 창고에 던져놓은 것들은 여간해서는 찾아가지 않는다. 사실상 재활용 되지 않는 감정들만 놔두고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이들은 상대방으로부터 스트레스와 갑갑함이 섞인 문제와 고민들을 넘겨받는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오직 자신에게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상대방이 가진 호감의 증거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다. 여자는 결코 호감이 있거나 마음에 든 남자에게 자신의 치부가 될 만한 문제나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고민들을 푸념삼아 쉽게 늘어놓지 않는다. 타인의 관심과 애정에 목마른 관심 받기 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착각은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소통이 다소 부족했더라도 착각에 빠지지는 않는다. 간절한 바람이든 설렘을 동반한 염원이든 착각은 어찌되었든 간에 혼자만의 결론이란 점에서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비극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반드시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이 상식을 착각에 빠져 잊어버리는 순간 결정적인 실수가 발생한다. 사랑은 공감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공감은 소통에서 나오고 소통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씩 천천히 주고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애정공세와 확대해석을 낳는 착각이 아니라 감정의 속도를 맞춰 조절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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