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의 고층버튼을 누르게 되면 옥상으로 올라갈까 봐 애써 눈을 돌렸다. 가슴 한가운데가 바람구멍이 난 것처럼 휑하다. 절망적인 감정과 막막한 기분을 현실과 분리하려고 애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붙잡고 감정을 쏟아내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이틀간 유례없는 폭설이 내리고 난 후의 하늘은 맑고 투명하다. 1미터 가까이 쌓였던 눈도 많이 녹았다. 가슴 깊은 곳에 형태를 알 수 없는 응어리도 그렇게 녹는 날이 올까. 안양에 40cm 가까이 눈이 내린 날. 밤 중에 쌓인 눈을 치웠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삽질을 하는데 돌아보니 내 뒤로 눈이 잔뜩 쌓여있었다. 내 처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죽을 만큼 괴로운 시기를 이겨냈던 친구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놨다. 살면서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나는 죽을 용기가 없다.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곧바로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힘든 내 상황을 알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들도 있다. 괴로운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삶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나는 유약한 사람이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글은 누군가가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희망이 가득한 밝은 양지를 지향하는 이유는 내 안에 아주 차갑고 어두운 그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절망이 뱀처럼 도사리고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은 사실 도와달라는 뜻이다. 그리고 살고 싶다는 의지가 더 많이 남아있다는 반증이다. 친구는 너무나 힘들었던 시기 죽을 각오를 먹고 나니 오히려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힘내라는 공허한 말 대신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줬다. 그동안 말한 적 없는 내용을 대화로 주고받는 동안 조금 괜찮아졌다.
괴로움이 가슴을 가득 채울 때 촛불 같은 심정이 된다. 촛불은 꺼질 듯이 흔들리다 천천히 사그라든다. 심지가 어두워지면서 완전히 불씨가 꺼지나 싶을 때 다시 불꽃이 올라온다.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포기하고 싶다는 무력감이 서로를 밀어내느라 사투를 벌인다. 그러다 보면 가까스로 또 하루가 지나간다. 자려고 눕는 순간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눈길을 헤치고 달려와서 내게 뜨거운 밥을 사 먹이는 친구와 살길을 찾아보자면서 도와주는 친구도 있다. 나를 아껴주는 이들의 진심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이야기를 꺼냈을 때 한 친구는 옥상까지 올라가 볼 것을 추천했다. 막상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면 생각이나 충동은 사라진다는 그녀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하지도 않을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살다 보면 절망적인 감정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때가 있다. 생각은 누구나 한다. 그러나 막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죽을 용기도 없고 죽는 장면조차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나는 그저 잘 살고 싶은 것이다. 죽고 싶다는 말이나 생각은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남고 싶다는 역설적인 의지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