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옥상이랑 계단에 놔둔 화분을 거실로 옮겼다. 가족들이 없어서 텅 빈 거실이 보기 싫었다. 커다란 군자란을 일렬로 정렬했다. 초록빛에서 느껴지는 생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청소를 하고 설거지도 끝냈다. 다음은 분리수거다. 공동현관이 없는 40년 된 다가구 주택이라 겨울만 되면 고양이들이 올라온다. 간밤에 쓰레기봉투를 물어뜯어놨다. 테이프로 찢어진 부위를 붙였다. 재활용품을 박스에 담아 계단 아래다 내놨다. 집 앞 마트에 가서 음식물쓰레기봉투 한 묶음을 샀다. 유통기한이 지난 두부와 고기를 꺼내서 버렸다. 플라스틱 용기 안의 오래된 반찬도 다 버려야겠다.
잠시 한숨 돌리고 병원에 가져갈 도시락을 쌌다. 살면서 처음 싸보는 도시락이다. 밥을 짓고 불고기를 볶아서 도시락 용기에 담았다.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손이 알아서 움직였다. 다시 설거지를 하고 프라이팬을 키친타월로 닦고 뒷정리를 했다. 벌써 점심시간이 코 앞이다. 집안일은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아침 내내 부산스럽게 움직였는데도 여전히 집은 지저분하다. 역시 주부를 따라갈 수 없다. 가족들이 없어서 집은 온기가 없다. 빈자리는 티가 난다. 외로움을 덜어내려고 불을 켜놓고 TV도 틀어놨다. 햇빛이 잘 드는 시간인데도 실내가 어두운 느낌이다.
창문을 다 열고 환기를 시켰다. 울적하거나 마음이 괴로울 때 자주 환기하면 기분이 나아진다. 공기가 차다. 호 하고 창 밖으로 숨을 내뱉었다. 하얀 입김이 머리 위로 천천히 올라가면서 사라졌다. 올려다보니 하늘이 보였다. 겨울 하늘은 티 없이 맑은 물빛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이라 하얀 햇살이 선명하게 보였다. 익숙한 날씨다. 평범한 겨울이다. 작년 이맘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떠올려봤다. 기억나지 않는다. 내년 12월의 나는 오늘을 기억하고 있을까? 정신없이 2주가 지나갔다. 체중은 3kg 줄었다.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다 도시락을 싸려고 오랜만에 제대로 밥을 지었다.
숟가락으로 갓 지은 밥을 떠서 입 안에 넣었다. 오늘은 밥이 참 잘됐다. 고슬고슬하고 달다. 아빠가 지은 밥은 모래처럼 까끌거렸다. 엄마는 자주 진밥을 만들었다. 같이 먹고 싶은데 먹을 사람이 나뿐이다. 외동이라 혼자 먹는 밥이 익숙한데 오늘은 많이 외롭다.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면서 미뤄놨던 집안일을 끝냈다. 삶이 힘들 때 엄마는 쉬지 않고 집안일을 했다.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옥상을 쓸었다. 그때는 엄마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시간이 그냥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