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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11. 2024

맥도널드에서 만난 크리스마스

 오랜만에 맥도널드에 왔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익숙한 케이팝 대신에 캐럴이 흘러나왔다. 카운터에 놓인 작은 트리는 반짝이는 작은 전구를 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잊고 지냈던 기억과 추억들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겨울아침이지만 하얀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피아노로 연주한 <Angels We Have Heard On High>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거짓말처럼 울적한 기분이 나아졌다. 아침부터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걱정과 불안이 사라졌다.


 매장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붙어 있는 트리장식을 서서 잠시 구경했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만들었던 트리가 생각났다. 12월 첫째 주가 되면 창고에서 플라스틱 소재의 트리를 꺼내서 조립했다. 쌓인 눈을 표현하려고 약국에서 산 탈지면을 뜯어서 붙였다. 별을 꼭대기에 올리는 역할은 내 몫이었다. 금색 맥기로 도금한 별은 손바닥만 했다. 테두리에 작은 유리구슬 장식이 붙어있어서 반짝이는 모습이 예뻤다. 트리를 만들고 나면 그날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머리맡에 양말을 놔두고 잔 적도 몇 번 있었다. 형편이 빠듯해서 원하는 선물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크리스마스라서 마냥 행복했던 나이였다.


 매년 12월은 크리스마스 무비 시즌이다. <크리스마스 악몽>, <나 홀로 집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러브 액츄얼리>, <패밀리맨>, <34번가의 기적> 같은 영화를 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한다.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영화 속에 묘사되는 북미의 크리스마스가 주는 이미지를 좋아했다. 커다란 트리와 잔뜩 쌓인 선물상자, 캔디케인과 진저브래드맨, 산타와 루돌프, 예쁜 조명으로 빛나는 눈 덮인 주택가, 소중한 사람들이 모여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파티까지. 영화 속 크리스마스가 품고 있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풍경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좋다. 삶이 팍팍하고 힘들수록 따뜻함을 찾게 된다. 세상이 변해도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겨울. 친구네 집에 모여서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었다. 쿠팡이랑 다이소에서 산 장식을 창문에 붙여서 분위기를 냈다. 거실에 세워놨던 불이 들어오는 작고 하얀 트리가 참 예뻤다. <나 홀로 집에> 대신에 코미디 영화를 선택했다. 와인과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나눠 먹으면서 우리는 메리크리스마스를 함께 외쳤다. 솔크는 외로웠지만 친구들과 같이 있어서 정말 즐거웠다. 살아온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눈처럼 기억이 쌓이고 있다. 녹아 없어지는 것도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 행복한 기억도 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삶을 지탱하는 지지대가 된다. 무너지지 말라고 지지 말라고 나를 지켜주는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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