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ENFP다. MBTI를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대부분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내가 봐도 나는 엔프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검사를 여러 번 해봤지만 맨 앞의 E는 그대로였다.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결과는 동일하다. 성격이나 행동을 놓고 본다면 나는 대문자 E가 아니라 소문자 e에 가까운 엔프피다. 아니면 대문자 I보다 살짝 외향적인 소문자 i를 달고 있는 인프피 일지도 모르겠다. 인프피와 엔프피의 비율은 2:8 정도 되는 것 같다.
MBTI는 분류기준일뿐 성향의 비율을 정확하게 나타내지는 않는다. 극내향인 사람이나 극외향인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E에게 I가 없는 것이 아니라 둘 중 한쪽이 좀 더 강한 것뿐이다. 나는 I에 가까운 E다. 하지만 E 같은 I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내향성과 외향성의 경계선은 희미해진다. 낮과 밤이 변하듯이 유동적이다. 낯을 가린다기보다는 분위기를 탄다. 성격은 나침반의 바늘 같은 고정값이지만 성향은 달라진다. 바늘은 이리저리 돌면서 북쪽을 찾는 것과 닮았다.
MBTI는 혈액형이나 관상학과 동일한 위치에 있다. 성격과 성향을 유형화하고 행동이나 심리를 쉽게 파악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다. 인간은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싶어 한다. 타고난 본능이다. 시대는 변하지만 사람들은 그대로다. B형 남자가 나쁜 남자로 통했던 2000년대나 지금이나 세상은 똑같다. ‘눈치문화’가 존재하는 한국 사회는 타인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편이다. 상대방을 알고 싶은 욕구와 MBTI의 입지는 비례하는 것 같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는 마음이 담겨있다면 MBTI도 나쁘지 않은 대화소재다. 관심도 일관성이 있다면 진심이다. 옛날부터 그랬다. 혈액형, 손금, 별자리 같은 주제는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꺼내는 스몰토크였다. 서로의 MBTI를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지만 소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함께 교감하고 싶어 한다. 관심이나 호기심도 마음이다. MBTI는 이제 마음을 전달하는 흔한 한국식 표현법이 된 것 같다. 꼭 인사처럼 서로 주고받는 모습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