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첫걸음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세 번째 독후감이자 세 번째 야구 글이다. 최근 야구가 개막한 흐름에 조금 올라탈 필요가 있다 보니 야구 이야기만 하고 있다. 뭐 어떤가? 유행하는 것에 억지로 편승할 필요는 없지만, 유행하는 것을 일부러 거절할 이유도 없다.
책을 읽기 전에 잠깐 책과 관련된 맥락부터 이야기하겠다. 그래야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읽은 책은 이전에 읽었던 책들과 달리 성공담이 아니라 실패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전에 읽었던 두 책들은 박용택과 김태균처럼 선수로서 성공한 이들이 은퇴 이후 자신의 성공 경험을 풀어낸 책이다.
반면에 이 책은 선동열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내려놓은 이후에 쓴 책이다. 야구인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선동열은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하나였고, 타이거즈의 에이스였으며, 나고야의 태양이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부임해 우승도 2번이나 한, 성공한 야구 선수이자 야구 감독이었다. 그런 그의 실패담?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2번의 우승 이후 좋지 못한 마무리를 지으며 물러났다. 친정 팀 기아(해태의 후신)에서는 가을야구 진출에도 실패하면서 완전히 ‘금지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2018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감독을 하면서 금메달 획득이라는 목표는 성취했지만 선수 선발과 관련해 국정감사에 불려 나가는 시련을 겪었다. 이 책은 ‘감독 선동열’이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데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선동열 감독에 대한 국정 감사가 왜 진행되었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해태 왕조의 대들보였던, 삼성의 우승을 이끌었던 그에게 이런 경험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나만의 추측이지만 이 국정 감사가 그가 <선동열 야구학>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의 선동열에게 묻다.’
책은 이렇게 포문을 연다. 선동열은 KT 위즈에서 인스트럭터로 있을 때 KT 위즈 투수들과의 간담회를 회상하면서 자신이 과거 했던 ‘투구 3000개’ 발언에 대해 해명한다. 간담회 당시 이보근이 ‘아직도 캠프에서 공 3000개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기 때문이다.
선동열이 하고 싶었던 말은 20대 초반 젊은 투수들이 폼을 정립하기 위해 훈련 때 많은 공을 던져서 자신의 투구 밸런스를 정립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맥락이 생략되고 ‘3000 투구’라는 자극적인 문구만 남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위대한 선수가 되려면 많은 훈련량은 필수다. 젊은 감독 선동열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였다.
하지만 노력의 양만으로 정답에 다가갈 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리 강력한 구위와 빠른 구속을 자랑하는 투수라도 제구가 안되면 쓸 수가 없듯, 방향성을 상실한 노력의 끝은 좋을 수 없는 법이다. 선동열 역시 이러한 진리를 모르지 않았다. 적어도 이 책을 쓴 시점에서는 말이다. 그는 빅데이터의 시대에서 기술과 데이터를 적절하게 활용해야 인간의 경험과 직관을 뛰어넘고 가능한 최소 비용으로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쓴 2021년의 선동열은 2005년~2011년 삼성 감독을 맡았던 선동열처럼 ‘3000 투구’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른 훈련 방식이 필요하고, 그 방식을 정립하는 데에는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015년 WBSC 프리미어 12에 투수코치로 참가했던 선동열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2015 프리미어 12에서 우승의 기쁨을 만끽할 때도 그는 숙제를 먼저 생각했다. 160km의 패스트볼을 던지던 오타니 쇼헤이의 존재 때문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타자들은 결선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일본을 상대로 4:3 승리를 거뒀지만, 오타니 쇼헤이를 상대로 7이닝 동안 안타 하나와 볼넷 하나만 얻어내는 데에 그쳤고, 11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강속구가 전부는 아니지만 투수에게 그만한 무기도 잘 없다. 130km의 직구로 프로 생활을 했던 유희관이 이상한 거지, 당장 KBO만 해도 투수 구속이 못해도 145km는 넘어야 리그에서 생존할 수 있다. 패스트볼의 구속이 빠를수록 패스트볼의 피안타율, 피OPS 모두 유의미한 수준으로 낮아졌다. 구속은 투수의 수준을 보여주는 유의미한 지표라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과 통계, 데이터를 통해 올라간 훈련 수준 덕분에 MLB 투수들의 평균 구속은 가파르게 올라갔다. 하지만 KBO 투수들의 구속은 MLB나 NPB 선수들의 구속 증가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선수들이 게으르다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MLB, NPB 선수들은 배고프고 KBO 선수들만 갑자기 배가 불렀다는 결론은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논리적이다. MLB, NPB 선수들이 KBO 선수들보다 돈도 더 많이 버는 걸 생각하면 말이다.
과거 선수들에 비해 요즘 선수들이 게을러졌다는 지적 역시 옳지 않다. 당장 책의 저자 선동열부터가 선발 등판 전날 음주하고 완주했다는 무용담을 갖고 있다. 비슷한 일화를 갖고 있는 선동열의 타이거즈 후배 윤석민 역시 이미 은퇴한 몸이다. 안우진, 원태인, 곽빈, 문동주, 이의리, 구창모 같은 선수들이 선발 등판 전날 음주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못 들었다. 오히려 요즘 선수들이 과거 선수들보다 더 성실하다고 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그러니까 최근 국제대회에서 이어지는 야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은 결국 가르치는 방식에서 뒤쳐졌기에 나온 결과다. 선동열은 프리미어 12때 본능적으로 이런 사실을 느꼈기에 우승을 했음에도 우리 야구가 진 숙제를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선동열의 회상을 봤을 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누군가 실패했을 때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의지의 문제’, ‘노력의 문제’, ‘배가 불렀다’ 이런 말들을 하곤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에서 의지와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더 큰 원인을 외면하고 의지와 노력만으로 모든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려고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진정한 의미의 ‘의지와 노력의 부족’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선동열의 회상이었다.
사실 KBO는 의지로 해결되는 리그이긴 하다. 그 의지가 150억짜리 의지라 문제인거지…
생각해보면 ‘노오오오력’은 소위 ‘꼰대’라 불리는 이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다. 노력과 성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미덕이고, 그렇기에 어른들이 특히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꼰대라 하면 흔히들 나이 많은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선동열은 나이가 들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오히려 꼰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선동열의 이런 모습이 야구를 넘어 다른 분야에서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핵심은 나이가 아니다. ‘젊은 꼰대’라는 말도 있지 않나. 핵심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이가 어려도 꼰대가 될 수 있고, 나이가 많아도 꼰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꼰대 또는 꼰데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변형된 속어이다.
위키백과에 나온 꼰대의 정의다. 위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본인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선수 선동열, 감독 선동열보다 훨씬 나이를 먹은 야인 선동열은 오히려 젊은 시절보다 꼰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 책은 현대 야구의 트렌드를 짚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세이버매트릭스와 빅데이터, 그리고 과학의 발전을 기반으로 한 구속의 비약적 증가, 뜬공 혁명, 수비 시프트, 피치 터널 등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요즘 소위 ‘야구를 본다’하면 한 번은 들어본 이야기들이다. 그러다 보니 선수 출신이 아닌 야구팬 입장에서 보면 세이버매트릭스나 트래킹 데이터 등 신문물(?)적 요소들을 거부하는 현장의 반응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저자 선동열이 선수 출신이라 이런 부분에 대해 잘 설명했던 것이 인상 깊었다.
이런 부분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시프트의 도입이었다. KBO에서 수비 시프트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사람은 한화의 감독 카를로스 수베로였다. 거꾸로 말하면 수베로 감독의 부임 이전에는 시프트 도입 시도가 없었거나 있어도 거센 저항에 부딪혀 현실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MLB에서도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재미를 본 2013년 전후로 수비 시프트가 리그 전체에 퍼졌다.
사실 시프트는 최후의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를 저격하는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가 시초인, 야구에서 오래된 수비 전략이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도 시프트는 손해보다 이득이 많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수비 시프트가 광범위하게 도입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시프트 도입의 사례는 현장 선수들과 감독, 코치진이 새로운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팬들의 생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초의 시프트라 할 수 있는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는 실제로 효과가 있긴 했지만 현장 사람들에게는 그저 특정 타자를 겨냥한 ‘고육지책’에 불과했다. 테드 윌리엄스 같은, 자연재해 같은 타자를 상대하기 위한 변칙이지, 다수의 타자들에게 적용할 법한 작전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막상 공을 던지는 투수는 통계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10번의 시프트 중 9번 효과를 봐도 한 번 실패해 2루타가 3루타가 되고, 아웃카운트가 안타가 되면 그 실패에 더 분노하는 것이 투수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손실 회피 성향’을 투수들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선동열 본인도 그랬고, 그래서 그는 감독 시절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과부 마음은 과부가 안다고, 투수들이 시프트를 싫어한다는 것을 투수였던 본인이 제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대목은 마지막 장이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이렇다.
‘나는 후배들을 잘못 가르쳤다.’
선수로서는 정점 그 자체였고, 감독으로서 우승도 2번 거머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나는 후배들을 잘못 가르쳤다고 말한다. 사실 이 자체가 굉장히 용기 있는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한민국 야구인 중에서 선동열에게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가 감히 ‘국보 투수’와 ‘우승 감독’이란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쥔 사람에게 야구로 딴지를 걸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가 대충 틀린 말을 해도 대놓고 반박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이 후배들을 잘못 가르쳤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선수들은 이미 바뀌고 있고, 이제 선배들이 바뀌어야 선수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할 수 있다고 말이다. 대한민국, 그것도 대한민국 스포츠계에서 평생 몸담은 사람이라면 연공과 선후배 관계, 나이 등 위계질서적 요소들이 몸에 밴 수준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정점에서 위계질서적 요소들을 부정하고 있다.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다못해 일반적인 이직 준비 역시 어려운 법이다. 그만큼 사람은 타성을 거스르는 것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선동열은 정점에 섰음에도 자기 반성을 계속하고,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다짐한다.
나는 야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야구 공부도 계속할 것이다. 다시는 선수들을 잘못 가르치지 않기 위해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항상 내가 틀릴 수 있음을 기억할 것. 그리고 올바른 방향에 대한 고민을 죽을 때까지 그만두지 않을 것. 이 두 가지를 기억해야 진정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P.S.-스트리머 매직박은 야구 게임을 할 때 <선동열 야구학>을 즐겨 인용하곤 한다.
“<선동렬 야구학>에 의하면, 2B0S가 타자의 OPS가 가장 높을 때라고 합니다- 그렇지! 아휴 저거 진짜"
사실 선동열 야구학에 저런 문구는 없다. 적어도 내가 찾아봤을 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