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앞서 읽었던 박용택의 <오늘도 택하겠습니다>와 달리 본격적인 야구 타격 이론에 대한 글이다.
일단 서론부터 흥미롭다. 서론에서 김태균은 <스타트 위드 와이Start With Why>라는 책을 언급한다. 이후 김태균은 타격에 대한 저서들도 언급하지만 그런 그가 제일 먼저 언급한 책은 야구 관련 저서가 아니라 자기 계발 저서였다. 고민에 직면했을 때 ‘무엇을(What)’이나 ‘어떻게(How)’가 아닌, ‘Why(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야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이는 단순히 야구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부를 할 때도 모르는 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식을 습득한다.
분야에 따라 요구되는 능력은 다를지 언정 요구되는 태도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일을 하건 이유를 제대로 알고 해야 제대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태균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이러한 진실(?)을 알고 본인에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에 대한 답을 기반으로 타격기술을 정립했다. 이 책은 그렇게 정립한 타격 기술을 활자로 풀어낸 글이다.
일단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김태균이 열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뛰어난 타자는 은근히 많다. 하지만 자신이 느낀 바를 수치와 이론에 근거해 체계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단순히 감각으로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이론으로 정립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태균은 그것을 해내고 있다. 이는 본인 스스로 똑똑해야 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이룬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의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선을 받아들이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김태균은 타격에 대한 접근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타격의 과학>을 쓴 MLB 최후의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접근법이다. 다른 하나는 <3할의 예술>을 쓴 전설적인 타격 코치 찰리 로의 접근법이다.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 지론은 영덩이의 회천과 체중 이동을 기반으로 한 로테이셔널 히팅이다. 윌리엄스는 엉덩이와 허리의 회전력을 극대화해 가능한 타구를 멀리 보내도록 하는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의 이론을 정립했다. 힙턴으로 만든 회전력을 타구에 실어 보내는 것이다.
반면에 찰리 로의 타격 지론은 체중 이동을 통한 추진력을 기반으로 한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이다. 타격 순간 앞발을 내딛으면서 무게 중심을 옮겨 임팩트 순간 체중을 싣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 로의 지론이다.
김태균은 둘의 이론을 답습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응용해 자신의 몸과 성향에 적합한, 변형된 타격 메커니즘을 정립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그 일련의 과정을 담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찾은 그만의 정답은 배트로 나이키 곡선을 그리는, ‘나이키 스윙’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나는 김태균이 공부를 했어도 굉장히 잘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경험으로 배운 사실을 단순히 노하우로 체득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를 설명할 이론적 베이스에 대해서도 공부하는 것은 공부의 왕도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무언가를 학습한다는 것은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타격 메커니즘에 대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김태균이 후배 선수들을 보면 ‘요즘 것들’ 운운하는 원로 야구인들과 결이 굉장히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위 ‘선수 출신’ 야구인들을 보면 젊은 선수들에 대해 과거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김태균은 대놓고 탑급 선수들을 제외한 1980~90년대 투수들의 제구는 요즘 선수들보다 못하며, 요즘 선수들이 구속도 더 빠르고 던질 수 있는 구종도 더 다양하다고 말한다. 선후배 관계도 엄격한 한국 야구계에서 이렇게 말하는 전직 선수들은 많지 않다.
선배로서 경험과 지혜를 전해주는 건 좋지만 거기까지 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은 후배들의 몫이다. 내가 옳다는 독선, 나처럼 하라는 오만은 후배들의 발전에 장애물이 될 뿐이다.
다들 알겠지만 김태균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 저렇게 생각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방식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태균은 은퇴한 이후에도 오만을 경계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쉽게 사고방식이 망가지지 않는다. 야구에서 선구안이 좋은 타자가 쉽게 망가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공교롭게도 김태균은 커리어 통산 출루율이 0.421에 타율-출루율의 갭이 0.101에 달하는, 선구안이 좋은 선수였다.
김태균이 맞서는 또 하나의 선입견은 훈련에 대한 것이었다.
‘훈련은 실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김태균은 말한다.
‘훈련은 훈련처럼, 실전은 실전처럼 해라.’
본인은 진부한 표현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참신한 표현이었다. 왜냐하면 훈련은 결국 실전을 위한 준비 과정이고, 김태균은 실전에서 잘할 수 있는 준비를 하라는 의미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능사가 아니라 내가 이 훈련을 ‘왜’ 하는지 명확히 알고 훈련에 임하라는 교훈이다.
마지막으로 김태균은 무의식적으로 세이버메트릭스에서 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김태균 본인은 박용택 같은 사람들처럼 세이버메트릭스와 통계를 적극 환영하지는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세이버메트릭스에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4번 타자니까 적극적으로 쳐야 한다.’ 야구계에서 오래된 정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김태균은 이에 대해 볼넷을 얻어내는 것,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는 것 역시 ‘팀 배팅’이라고 말한다. 김태균은 ‘베스트 셀’에 들어오는 공만 치고 보더라인 근처의 공은 치지 말라는 테드 윌리엄스의 지론에 근거해 좋은 공이 오는 순간까지 기다리는 것이 타자의 미덕이라 말한다.
‘인생이라는 타석에 섰다면 미노가시 삼진(루킹 삼진)은 당하지 말라’는 야구 명언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김태균은 정면으로 맞선다.
이러한 김태균의 지론과 태도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연구를 통해 얻은 확신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관념이나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김태균의 지론은 아웃카운트를 기록하지 않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라 역설하는 세이버메트릭스의 기본 지론과 일치한다.
하지만 선수의 지론이 명확해도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지도자의 존재 역시 중요하다. 김인식 감독은 김태균에게 ‘삼진 당해도 괜찮으니까 나쁜 공은 절대 건드리지 마’라고 했다. 김태균이 위대한 타자로 거듭난 것은 김인식 감독이 김태균이 스스로 공부한 것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허락한 데서 시작한다. 야구에서 감독의 영향력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미미하다곤 해도 지도자가 그만큼 중요하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도 김태균은 타석에 섰을 때 자신의 목표를 ‘죽지 않는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타자 김태균의 목표는 항상 ‘아웃카운트를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아버지 빌 제임스와 김태균은 방법은 달라도 목적지는 하나였던 셈이다.
김태균은 세이버메트릭스가 사랑하는 대표적인 야구선수다. 본인이 숫자에 밝지 않아도 김태균은 세이버메트릭스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천한 선수다.
김태균은 이렇듯 나름 선입견에 도전하면서 위대한 타자로서 금자탑을 쌓았다. 하지만 선입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들 입장에서 김태균은 많이 아쉬운 타자였다. 그래서 부당한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김태균 본인도 나름 억울했나 보다. 책에서 나름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대목이 은근 재밌었다.
‘스탯 관리’란 말이 있다. 이글스가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어떤 팬들은 내 타격을 보고 ‘김태균은 스탯 관리만 한다’고 비난했다. 팀 성적이 부진해서, 또 내가 더 많은 홈런을 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참 이상했다. 내가 20대 시절에 볼넷을 많이 얻고 출루율이 높으면 ‘선구안이 좋다. 자기 욕심을 내지 않고 팀 배팅을 한다’고 칭찬받았다. 내 타격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30대에는 ‘개인 기록만 챙긴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 억울했던 것 같다.
P.S-이 책에서 김태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언급도 있긴 하다. 중학생이었던 김태균은 교내 씨름대회에서 씨름부 선수를 이긴 적이 있다. 씨름부장은 김태균에 대해 강호동을 이길 재능이라고 조른 끝에 씨름을 했지만 김태균은 일주일 만에 야구로 돌아왔다. 평소와 다른 근육을 써서 온몸에 알이 배겼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쓰는 근육도 다른데 씨름부를 씨름으로 이기는 것은 평범한 재능이 아니다. 아무래도 DNA의 힘을 완전히 무시는 할 수 없나 보다. 역시 재능의 차이라는 해괴한 결론이 나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