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ody to somebody”

자기 의존

by woogeun


교환학생을 온 베를린에서 나는 "nobody"였다. 아시아인에 독일어를 잘하지 못하는 그런 3등 시민으로 살아갔다.



서울에서 나는 “Somebody”였다. 한국인이었으며, 남자이고, 선천적으로 남들보다 키와 덩치가 더 컸고, 꽤 좋은 대학에서 높은 학점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으며, 소중한 친구들과 가족들이 주변에 있었다. 부족함이 없었기에 불안하지 않았다. 그러다 베를린에 오게 되니 나를 설명하고 증명해주던 조건들이 사라졌다. 그렇게 난 불안해졌다. 외국인들에게 꿇리지 않으려고 운동도 공부도 더 열심히 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다 만약 ‘나에게 위의 스펙들이 없었다면 과연 한국에서도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살지만 한국인이 아니라 재외국민이었다면? 여자였다면? 키가 작았다면? 좋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면? 소중한 친구들과 가족이 주변에 없다면? 답은 뻔했다. 한국이었어도 난 불안했을 것이다. 베를린에 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난 조건이 없으면 불안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난 스펙들에 계속 집착하며 살아가야 하는 건가, 그리고 한국을 벗어나면 난 다시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지금 느끼는 자괴감을 반복해야 하나 싶었다. 우리 사회에서 권장하는 스펙 쌓기는 불안 해소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해결책이었다.



불안하다 보니 문득 군대 시절이 생각났다. 군대는 워낙 특수한 상황에 사람을 처하게 하여 불안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데, 지금보다 어린 내가 과거에 어떻게 해결했나 궁금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이렇게 불안한 상황이 처음 다가온 훈련소 시절에는 무작정 그 상황을 회피하려고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나쁜 생각에 마음을 주면 큰일 난다”를 속으로 되뇌며 회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쁜 생각이 머리 안에 들어올 때면 정말 정말 고통스러웠다.



시간이 좀 지나자 친한 친구와 가족에게 의지했었다. 속마음을 털어놓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이때 남에게 솔직하게 내 감정을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도와준 친구들과 가족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하지만 사실 통화할 때만 기분이 괜찮아질 뿐 불안감에 있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이제 “회피-타인에게 의존” 단계를 지나 그래도 난 이제 “힘들면 발전하자”의 단계까지 발전했고 이제는 다 끝난 줄 알았다. 힘들면 노력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다 해결할 수 있었는데, 결국 다시 불안해졌다. 그러다 Youtube AI의 추천을 받아 스윙스님의 Youtube 영상을 보고 부족한 부분을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었다.



메시지는 간단했다.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클리셰처럼 매번 듣는 말이고 전에 자기 암시 관련한 영상들도 봤기에 머릿속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진정으로 필요할 때 듣는 교훈은 역시 마음에 울림을 주는 깊이가 달랐다. 머리로만 이해하던 걸 가슴으로 느꼈다.



불안한 문제를 직면하면 회피하다가 친구들에게 징징대던 그런 내가, 노력해서 스펙이 조금 더 잘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던 내가, 이제야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 너무 기쁘다. 과거에도 나 자신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알았지만 다른 것들과의 우선순위에서 매번 밀렸었다. 이젠 나를 믿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확실히 한 후에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야겠다. 전까지는 귓가 주위에서 둥둥 떠다니던 “자기 암시”가 이제는 귀에 쏙쏙 박힌다. 오늘 들으면서 헬스를 하니 중량이나 횟수면에서 평소보다 훨씬 잘 되더라.



물론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맹목적으로 믿기만 한다면 잘난 체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감을 바탕으로 충분한 노력이 동반된다면 주어진 한계를 뚫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내가 되었으면 한다.



Youtube 영상에서 소개받은 책중에 인상 깊었던 세 개의 구절로 마무리해본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자기 마음속에서 진실인 것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진실이라고 믿는 것, 그것이 천재다.

자신감과 자존감은 느껴져야지, 보고서처럼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믿는 데 자꾸 근거를 대려고 하면 타인의 생각에 집착하게 된다. 연인에게 20장짜리 보고서를 써서 고백하는 경우는 없듯이, 감정은 느껴져야 한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의견을 좇아 생활하는 것은 쉽다. 혼자 있으면서 자신의 의견에 따라 살아가는 것도 쉽다. 하지만 위대한 사람은 시끄러운 군중 속에서도 온화한 태도로 혼자 있을 때와 같은 독립성을 유지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가치 있는 것을 자신의 외부에서 찾았기 때문에 약해지고 말았다는 사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주저 없이 자신의 생각에 몸을 던지고, 곧장 바른길로 돌아가 우뚝 선 채 자신의 손과 발로 기적을 행한다. 두 발로 땅을 단단하게 딛고 있는 사람이 물구나무를 선 사람보다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Self-Reliance, Ralph Waldo Em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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