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면 늘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손끝에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노트북 화면 속 깜빡이는 커서는 나를 몰아붙이는 듯했고, 그럴수록 더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어도, 몇 번이고 쓰고 지워도 결국 빈 화면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책망하기만 했다.
"왜 오늘은 안 될까?"
마음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면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뒤엉켜 더 어지럽혔다. 어쩌면 난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몰라, 하는 자책과 한숨이 반복됐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 순간은 내 마음이 글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원한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잊은 채,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만으로 마음을 밀어붙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글을 쓰지 못하는 날들이 나를 실패자로 만드는 건 아니었다. 써지지 않는 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내 안에서 쉬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려 애썼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반짝이는 빈 화면이 내게 무언가를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글로 나를 표현하고, 감정을 정리하며 살아왔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건, 마치 내가 나를 잃어버린 듯한 두려움을 줬다. 하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쓰지 못하는 시간조차 글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며,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말이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너는 언제나 충분히 잘해왔어. 오늘 글이 쓰이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잠시 쉬어가는 것도 괜찮아."
어느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긴장으로 가득했던 손끝에도 다시 따뜻한 온기가 돌아오는 듯했다. 이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았기에, 오늘 쓰지 못한 글이 언젠가는 더 찬란한 문장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다시 한번, 좀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 자신을 위로했다.
"글은 언제나 너를 기다리고 있어. 네가 준비될 때까지 말이야."
이제 서둘러 나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천천히 걸으며 내 마음의 풍경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 풍경이 무엇이든, 차분히 바라보면 다시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서 피어날 테니까.
지금 쓰지 못하는 시간도 결국 쓰게 될 글의 일부이며, 그 글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소중한 여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나는 마음 편히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오늘은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이 아니라, 조금 더 깊이 나를 이해하는 날이다. 그리고 나는, 이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