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길 위에서〉
걷고 싶을 땐 굳이 이유를 만들지 않는다.
그냥 걷는다.
길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오늘도 그 위를 조용히 지난다.
콘크리트 인도 옆, 바람에 흔들리는 은행나무.
누군가는 급히 지나가는 출근길이고,
누군가는 커피를 들고 친구와 웃으며 걷는다.
하지만 내 귀엔 오직,
신발 밑창이 바닥에 닿는 소리만 맴돈다.
‘또각— 또각—’
혼자 걷는 길은 음악보다 정확하고,
말보다 조용하다.
**
길은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나를 데려간다.
가로수 그늘 밑에서
햇살이 새어 들어오는 순간,
문득 마음속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가 번진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어떤 표정,
말없이 스쳐간 인연 하나.
걸음은 앞으로 향하지만
생각은 뒤로, 멀리 돌아간다.
**
가끔은 오래된 골목을 걷는다.
벽돌 담장 사이로 담쟁이넝쿨이 퍼져 있고,
누군가 놓고 간 운동화 한 짝이
낡은 전봇대 아래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아무도 보지 않지만,
그 모든 풍경이 내 눈엔 이야기가 된다.
‘이 신발은 어디까지 걸었을까.’
‘저 창문 안에는 지금 누가 있을까.’
생각은 길을 따라 흐르고,
내 마음도 천천히 따라간다.
어딘가 닫혀 있던 감정의 문이
슬며시 열리는 순간이다.
**
혼자 걷는 길에는 경쟁도, 목적도 없다.
누구를 따라갈 필요도 없고,
뒤처졌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내 속도대로, 내 호흡대로.
왼쪽엔 흐드러진 꽃이 피어 있고,
오른쪽엔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나는 그 가운데를 걷는다.
어느 쪽도 붙잡지 않은 채,
내 중심을 따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
사람들은 길을 통과하는 데에만 집중하지만
나는 길을 걷는 그 순간에 머문다.
지나가는 풍경을 본다는 건
내 안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니까.
걷다 보면 마음이 정리된다.
묵직했던 감정이 내려앉고,
해야 할 말보다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럴 땐 그냥, 입을 다문다.
침묵도 걷는 법이니까.
**
해질 무렵,
바람이 좀 더 부드럽게 뺨을 스친다.
전봇대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고,
하루가 천천히 접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길 위에서 혼자였지만,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
그냥 나였고,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