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TV 앞에 남은 건 추억뿐인가

내 시선 속의 이슈

by 박동욱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손이 가던 채널들이 있었다. SBS의 〈런닝맨〉, KBS2의 〈1박 2일〉처럼 한때 “국민 예능”이란 수식어가 어울리던 프로그램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느낌이 확연히 달라졌다. 새로운 기대보다는 “그래, 아직도 하긴 하네” 하고 안부를 확인하는 기분에 더 가깝다.


‘지상파 예능의 고인물’ 논쟁은 단순한 인상이 아니다. 숫자 역시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2024년 예능 보고서를 보면, 광고주가 주목하는 2049 타깃 시청률은 점점 하락 중이다. 이제 20·30대는 TV로 실시간 예능을 보기보다 다시보기, 클립, OTT 서비스를 통해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프로그램이 큰 화제를 모아도, 그 열기가 예전처럼 시청률로 이어지진 않는다.


반대로 60대 이상의 시청률 비중은 점점 커진다. 주말 지상파 예능이 더 이상 ‘젊은 세대의 놀이터’가 아니라 “아직도 TV를 켜놓는 사람들”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사이 〈런닝맨〉은 어느덧 방송 15년 차를 맞았다.


정말 긴 역사다. 그런데 최근 15주년 특집을 포함해 팬 커뮤니티를 보면 “이제 예전 전성기의 느낌은 아니다”라는 아쉬움이 쌓이고 있다. 새롭게 바뀐 PD 체제 이후로는 음식 중심 기획, 비슷비슷한 게스트, 반복되는 시민 인터뷰 구성이 많아지면서 “신선한 미션 예능”이었던 이미지는 옅어지고, “그냥 오래된 예능”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1박 2일〉은 시즌제를 통해 멤버를 교체하면서 버텨왔다. 2007년 시작해 시즌4까지 이어왔고, 2024년에는 뉴진스가 출연한 회차에서 최고 9%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일시적으로 반짝 튀는 인기는 “프로그램의 힘”이라기보다는 “게스트의 화제성”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초창기만큼 여행지와 게임, 멤버 캐릭터만으로 주말을 장악했던 시절의 힘과는 거리가 있다.


지상파 쪽은 이렇게 말한다.

“여전히 시청률 잘 나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시청률을 올리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잘 말하지 않는다. 2049 시청률은 계속 빠지고, 브랜드 평판 상위권 자리는 이제 대개 케이블이나 OTT 예능이 차지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MBC의 〈나 혼자 산다〉는 방송 13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2049 주간 예능 1위, 예능 브랜드 평판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초기 콘셉트를 꾸준히 밀고 가면서도, 세대와 라이프스타일이 바뀔 때마다 새 인물과 에피소드를 과감히 수혈해왔다. 시청자가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거나 “저건 절대 안 닮고 싶다”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생활 밀착형 리얼리티다. 이야기가 비교적 짧아서, 유튜브나 SNS 클립으로 손쉽게 재편집되고 회자된다.


비슷한 시간대에 방영하는 다른 지상파 예능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여행·게임·먹방’ 포맷을 조금 변형하는 데 그친다. 명목상으로는 리뉴얼했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1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


사실 예능의 세대교체는 멤버부터 바꾼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짜 바꿔야 하는 건 프로그램의 틀을 짜는 사람들과, 그들이 고수하는 ‘성공 공식’이다.


지상파 예능의 PD와 작가 체계는 지금도 안정적인 사내 승진 구조 위에 있다. 이 시스템 덕에 노하우 축적이나 리스크 관리엔 강점이 있지만, 동시에 “예전에도 이 방법이면 잘 됐다”는 기억이 지나치게 강한 안전장치가 되기도 한다.


새 프로그램 회의가 열려도, 최종까지 살아남는 아이템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너무 실험적이다.”

“광고 붙이기 어렵다.”

“가족 시간대에 보기엔 세다.”


이런 이유로 아직도 주말 저녁에는, 중장년층이 무난하게 볼 만한 여행, 게임, 먹방, 패널 토크 예능이 반복된다.


그 사이 젊은 시청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넷플릭스, 티빙, 쿠팡플레이, 웨이브 같은 OTT로 이미 옮겨가 버렸다.

더 이상 유튜브는 단순한 동영상 플랫폼이 아니다. 이제는 사실상 새로운 ‘예능 1번 채널’이 됐다. 집에서 TV로 유튜브를 시청하는 시간은 2023년에 비해 2024년에 더 늘어났다. 해외 조사 결과, 집에서 영상 시청 시간의 40% 이상이 유튜브에 쏠린다는 보고도 있다(www.ofcom.org.uk 참고).

이쯤 되면 시청자들은 이미 플랫폼을 옮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방송사와 PD들이 세대교체에 얼마나 의지가 있느냐다.


지금 지상파 예능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간단하다.


아직도 ‘전체 시청자’를 상정하며 예능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사실 20·30대는 이미 실시간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런데도 “모든 연령이 다 함께 즐기는 예능”이라는 환상 속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이제는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유튜브를 그저 홍보 채널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많은 프로그램이 지금도 클립을 잘라서 올리지만, 포맷 자체를 아예 디지털에 맞게 처음부터 설계하는 경우는 드물다. 길이, 편집, 리듬, 시청 환경이 전혀 다른데, 여전히 “본방송을 쪼개 붙인 것”에 그치고 있다.


젊은 제작진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줬는가?

서류상 ‘젊은 PD 전면 배치’ 같은 구호를 내걸어도, 실제 결정 구조는 예전 방식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단순히 인력만 세대교체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 방식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상파 예능을 향해 “고인물”이라는 말이 나올 때, 그 안에는 두 감정이 동시에 담겨 있다. 하나는 지루함이고, 다른 하나는 애정이다.

우리가 여전히 런닝맨과 1박 2일을 얘기하는 이유도, 언젠가 이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주말을 설레게 해주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감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선택이다.


과거의 영광을 기계적으로 연장할 것인가.

아니면 판을 새로 짜서, 지상파에서도 과감하게 새로운 예능 문법을 실험해 볼 것인가.


예능도 세대교체라는 생태계 위에서만 살아남는다.

만약 지상파가 이 사실을 끝까지 외면한다면, 주말 저녁 TV는 그저 한때의 추억으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이제, 방송국과 PD들이 답할 차례다.

“우리는 여전히 웃음을 만들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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