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가해자를 지켜준 사회, 양양 사태를 만들었다

내 시선 속의 이

by 박동욱

양양군에서 벌어진 이른바 ‘계엄령 놀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을 어떻게 방관해왔는지 다시금 뼈아프게 상기시키는 일입니다.


강원도 양양군의 한 7급 운전직 공무원이 환경미화원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과 욕설을 일삼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죠. 심지어 주식이 떨어지면 “제물을 바쳐야 한다”며 가혹행위를 강요하는 등, 황당한 ‘계엄령 놀이’가 벌어졌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쓴 직원을 여러 명이 밟게 하고, 청소차에서 내리게 해 뒤따라 뛰게 만들고, 특정 색깔의 속옷을 입으라고 강요했다는 등의 사실까지 보도됐습니다. 대통령실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며 엄정한 조치를 지시했고, 경찰은 폭행과 강요 혐의로 이 공무원을 입건했습니다.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패턴 같지 않으신가요?

힘을 가진 누군가가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집단 괴롭힘이 이어집니다. 주위 사람들은 다 알면서도 나서서 막지 않죠. 가해자는 이 모든 걸 “장난”이나 “군기”로 포장하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봐왔던 그 학폭의 풍경과 구조가, 이번에는 공무원 사회에서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겁니다.


양양 사건이 보여주는 건, 단순히 한 공무원의 일탈이 아닙니다. 점점 무뎌진 우리 사회의 “폭력 감수성” 자체가 문제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상급 공무원들이 괴롭힘을 알고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폭력을 보고, 직접 겪거나 쉽게 넘기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누군가는, 그런 감각을 성장한 뒤에도 버리지 못합니다. 사회에 나와 직책이나 권력을 가진 채, 똑같은 방식으로 폭력을 반복하게 되는 거죠.


진짜 본질은 여기 있습니다.

학교폭력은 흔히 “언젠가 고쳐질 문제아의 일탈” 정도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성인 범죄로 이어지는 미리보기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국내외 여러 연구 결과, 학교에서 다른 아이를 때리거나 괴롭혔던 청소년이 이후 데이트 폭력이나 각종 범죄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높다는 것이 거듭 확인됐습니다. 한 메타분석에서는 “학교폭력 경험이 훗날 폭력 행위로 이어질 위험을 유의미하게 높인다”고 결론 내렸고, 국내 연구들도 “학교폭력이 이제 단순한 탈선을 넘어 실제로 범죄화, 집단화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정리하자면, “학폭 가해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자”는 게 아닙니다. 이미 그런 행동들이 법적으로 범죄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짚고 싶은 겁니다.

폭행, 협박, 감금, 공갈, 성폭력—이런 단어들은 평소에는 무서운 범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학교 울타리 안에서는 “아이들끼리 싸움”, “별거 아닌 다툼”, “왕따” 같은 표현으로 부드럽게 포장될 뿐입니다. 피해자들은 평생 불안과 우울,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실제로 몸과 뇌에 깊은 상처가 남는다는 연구도 많죠.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학폭에 유독 관대했습니다.

“미성년자니까, 이번만 눈감아주자.”

“장래가 기대되는 아이다, 인생 망치지 말자.”

결국 망가지는 건 가해자의 인생이 아니라, 피해자의 삶이었습니다.


양양군 갑질 사건은 그동안의 그 관용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제 사례입니다. 물론 그 공무원이 학창 시절부터 학폭 가해자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명확한 건, 학교에서 익히고 배운 폭력과 위계 질서가 제대로 끊어지지 않으면, 훗날 '다른 이름'으로 어디서든 재현된다는 겁니다. 교실 뒷자리에서, 군대 내 생활관에서, 직장 사무실과 현장에서 그 악순환은 반복됩니다.


그래서 학폭 가해자에게 강력한 사회적 제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단지 “평생 낙인찍어 인생을 망쳐라”는 분노가 아니라, 폭력의 고리를 제때 끊어내자는 최소한의 방어선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강력한 제재는 이런 방향이어야 합니다.


첫째, 학교폭력은 법적으로도 범죄와 동등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야 합니다. 단순히 형식적인 징계 몇 줄이나 반성문 한 장으로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피해자가 원하면 자연스럽게 형사 절차와 보호조치가 이뤄져야 하고, 학교와 교육청 역시 ‘양쪽 모두 잘못’이라는 애매한 태도가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하고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둘째, 입시나 채용 과정에서도 실질적인 책임이 부과되어야 합니다. 학교폭력 이력을 공개하고, 대학이나 특수학교 진학 제한, 일정 기간 동안 공직, 교사, 군, 경찰 등 권력이 행사되는 직업 진입에 장벽을 두는 것은 ‘과하다’기보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도 학교폭력 가해 경험이 이후 공격성, 문제 행동, 음주·폭력 위험 증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미래를 위해 감춰주자”는 논리는, 결국 양양군처럼 권력을 쥔 가해자가 또 탄생할 수 있는 토대를 사회 스스로 마련하는 꼴입니다.


셋째, 제재와 함께 강제적인 교육이나 치료 프로그램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강력한 처벌이 응징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예전과 똑같이 살 수 없다’는 신호와 함께,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폭력을 배우며 자란 아이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는 법을 다시 배울 필요가 있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인 제약은 피할 수 없는 비용이 됩니다.


양양군 환경미화원들에게 가해졌던 ‘계엄령 놀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을 바로 잡지 못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권력을 가진 이가 자신의 기분과 이해 관계에 따라 타인을 ‘제물’처럼 다루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알면서도 침묵합니다. 교실, 운동장, 기숙사에서 익숙하게 봤던 그 풍경이, 이번에는 군청에서 재현된 셈입니다.


학교폭력은 결코 ‘철없던 시절의 실수’로 치부할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폭력이고, 또 다른 양양군 공무원을 만들어내는 예행연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정말 이런 사건이 다시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합니다.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학폭 전력을 감춰줄 것인가?’가 아니라, ‘피해자의 미래와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학교폭력을 처음부터 범죄로 다룰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말이죠.


양양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비극입니다. 이제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뿐입니다.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강력한 사회적 제재를 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양양군청을 기다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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