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반성의 힘인가, ‘국힘 찬스’의 힘인가

내 시선 속의 이슈

by 박동욱
news-p.v1.20250423.9dd6241744294f7fa33be9fd6936c270_P1.jpg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 [사진출처 = 연합뉴스]




1심에서 마약 투약 혐의로 실형을 받았던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의 아들이 2심에서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형량 자체는 그대로인데, 오직 법정 구속이냐 집으로 돌아가느냐가 달라지는 결정적 한 줄이 바뀐 셈이다. 서울고법 형사3부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의 설명은 익숙하다. 구속된 뒤 7개월 동안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는 점, 동종 전과가 없다는 점, 또 개인 투약 목적이라 유통 위험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내세웠다. 여기에 가족의 탄원, 부양할 어린 자녀, 법정에서 보인 진정성까지 함께 양형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종이에 적힌 판결문만 보면 “법과 원칙에 따른 판단”처럼 비친다. 하지만 현실에서 쏟아지는 질문은 훨씬 거칠다.


“이 나라에서, 이런 조건만으로 1심 실형이 2심에서 집행유예로 뒤집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는 의문이다.


대검찰청의 2024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마약 사범의 59%가 실형을 선고받는 반면, 집행유예는 36.2%에 그친다. 최근 몇 년 새 사법부가 마약 범죄에는 실형 비율을 더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강경한 ‘마약과의 전쟁’ 기조와 맞물리는 흐름이다.


그런데 이 흐름이 유독 정치인과 재벌가 자녀 앞에서는 자주 꺾인다. 홍정욱 전 의원의 딸, 대기업 3세들, 재벌가 장남까지, 변종 대마 밀반입이나 투약 사건에서 줄줄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례는 이미 여러 번 지적되어 왔다.


이번 판결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초범이고, 반성했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사유는 어느새 법원이 특권층 자녀들에게 반복해서 들려주는 일종의 관용 스토리처럼 굳어졌다. 판결문에 등장하는 표현들도 늘 비슷하다. 하지만 평범한 시민들이 마주하는 법정에서는, 이런 논리가 무기력하게 밀려나기 일쑤다.


7개월 구속, 반성문 제출, 가족 탄원, 어린 자녀. 이번 사건에서 형량을 바꾼 네 가지 핵심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생, 배달 노동자, 비정규직 가장이 마약 사건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똑같은 조건을 내세운다면, 2심에서는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사법부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대로 판결했다”고 말하겠지만, 통계와 실제 사례, 그리고 국민들의 현실 체감은 다르다. 마약 사범의 절반 넘게 실형을 사는 동안, 정치인이나 재벌가 자녀들은 집행유예라는 출구로 빠져나가는 일이 반복된다. 그러니 이번 판결을 두고 “국힘 찬스”라는 말이 이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힘은 그간 줄곧 “마약과의 전쟁”을 외쳐왔다. 마약 범죄에는 그 어떤 관용도 허용해선 안 된다며, 사법부와 수사기관에 더욱 강경한 대응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여당 중진 의원의 아들이 피고석에 앉자, 법원은 느닷없이 부드러운 표정을 보여줬다.


7개월간 반성했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말,

유통 목적이 아니라 개인 투약이니 사회적 위험이 크지 않다는 판단,

어린 자녀가 있으니 아버지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결정까지.

이번 판결에 따르면 이런 이유들로 집행유예가 가능해졌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약과의 전쟁’은 서민들에게만 선언된 것이 아니었는가.


‘무관용 원칙’이란 건 평범한 사람들만 지켜야 하는 규칙인가.


국회의원 배지를 단 집안의 자녀에게는, 똑같은 죄에도 다른 잣대가 적용되는 것인가.


그래서 이번 판결을 두고 “이쯤이면 국힘 찬스라는 비판을 사법부가 정말 모른 척할 수 있겠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법원이 경계해야 할 것은 단순히 ‘정치적 중립성’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사회적 공정성에 대한 납득과 설득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저 정도 사유라면, 나라도 비슷하게 나왔을 수 있겠다”는 최소한의 공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그 기준조차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사법부가 같은 메시지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돈과 권력, 그리고 탄탄한 배경이 있는 집 자녀의 반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형량을 뒤집을 만큼 강하게 작용한다.”


이런 메시지가 쌓이면 쌓일수록, 사람들은 법정을 정의가 실현되는 곳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보험 창구쯤으로 여기게 된다. '국힘 찬스'라는 냉소 어린 말 역시, 단순히 한 정당을 향한 정치적 비난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사법 불신이 정당의 이름으로 바뀌어 표출되는 언어다.


정말로 사법부가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말이 아닌 판결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법과 양형 기준에 따라 판단했다”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해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번 사건이, 이 피고인이, 이런 조건에서 왜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받았는지, 통계와 현실, 상식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야 한다.


만약 제대로 된 설명 없이 판결문에 “반성”, “초범”, “가족 사정”이라는 말만 적어두고 끝낸다면, 국민들은 앞으로도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법은 여전히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 누가 어떤 당에 소속된 부모를 뒀는지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


이제 공은 사법부로 넘어왔다. 만약 이번 판결이 정말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내린 정당한 결정이라면, 왜 그 원칙이 평범한 국민에게는 좀처럼 적용되지 않는지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런 설명마저 없이 침묵만 길어진다면, ‘국힘 찬스’라는 말이 쉽사리 사라질 리 없다. 오히려 더 노골적이고 거친 비판으로 번지며, 법의 권위는 조금씩 약해질 것이다.


법정 안에 국회의원 배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의혹을 떨치고 싶다면, 사법부는 지금이라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번 판결, 정말 아무 배경도 없는 무명의 피고인이었어도 같은 결과를 내렸을까?”


이 질문에 진심 어린 답을 내놓지 못하는 순간, 법의 공정성은 이미 또다시 무너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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