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선 속의 이슈
대한민국에서 정년은 법으로 60세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하고, 60세보다 낮게 정하면 아예 60세로 본다.
연금은 65세부터 나온다. 그 사이 최소 5년, 사람은 살아 있는데 소득은 끊기는 공백이 생긴다. 그래서 정부와 정치권은 정년을 65세로 올리자는 논의를 벌인다.
정년은 이렇게 설계됐다.
“나이가 들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회사는 책임을 다했다. 이제 물러나라.”
문제는 이 잣대가 국민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은 다르다.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나이는 오히려 내려갔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국회의원 피선거권 연령은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졌다.
최소 연령은 정교하게 조정한다.
그런데 최고 연령은 없다.
퇴직 나이도 없다.
정년이라는 단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22대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56.3세다. 50대가 절반 가까이, 60대 이상이 100명 넘는다. 최고령 당선인은 80대다.
다른 통계에서는 300명 평균이 57.4세, 국민 중위연령보다 10살 이상 높다고 정리한다.
직장인은 60세에 회사를 떠난다.
정치인은 60세에 권력의 절정에 오른다.
한쪽에서는 “이제 그만 자리 비켜 달라”고 말한다.
다른 쪽에서는 “이제부터가 경험의 정치”라고 말한다.
똑같이 나이를 먹는데, 개인의 늙음은 ‘퇴직 사유’가 되고, 권력의 늙음은 ‘경륜’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정년 제도의 논리는 단순하다.
나이가 들수록 업무 속도가 느려진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기 어렵다.
조직이 세대 교체를 해야 한다.
그래서 회사는 60이라는 선을 그었다.
정년은 노동자에게는 벽이 되고, 회사에는 안전장치가 됐다.
이 논리를 그대로 정치에 대입해 보자.
정치는 누구보다 빠르게 변하는 영역이다. 디지털 플랫폼, 인공지능, 기후 위기, 젠더 갈등, MZ세대의 삶. 한 세대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정무 감각과 시대 감수성이 떨어지면, 그 피해는 회사 내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가 전체가 같이 뒤처진다.
그런데 정작 이 영역에는 정년이 없다.
경쟁도 약하다.
낡은 감각이 자리를 놓지 않아도, 아무도 사직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정치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은 틀리지 않는다.
다만, 그 경험이 언제부터 ‘노하우’에서 ‘구시대 매뉴얼’로 바뀌는지 누구도 묻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60세를 넘긴 직원에게 말한다.
“후배에게 길을 터줘야 한다.”
국회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후배는 공천에서 걸러주면 된다.”
물론 국회의원에게 정년을 똑같이 60세로 씌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는 선거로 심판받는 자리이고, 유권자가 선택하면 80대도 국회에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룰이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왜 ‘능력이 떨어진다’는 논리는 회사 직원에게만 적용되는가.
왜 ‘세대 교체’라는 말은 직장인에게만 향하는가.
국민의 일터에는 나이 기준을 들이대면서,
국가의 일터에는 나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연령차별”이라는 말이 나오기 쉽다.
정년 연장 논쟁은 늘 이렇게 흘러간다.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
기업 부담이 커진다.
고령 노동자의 생산성이 떨어진다.
정작 정치권 스스로에게는 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고령 정치인의 의사결정 속도는 어떤가.
새로운 세대의 언어를 이해하는가.
오늘의 다수 국민이 겪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는가.
정년을 올릴지 말지,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법을 누가 만드나.
바로 그 정년의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다.
정년 논쟁의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은 국회의원이다.
정년 논쟁의 결과를 온몸으로 맞는 사람은 국민이다.
나이가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나이에 대한 기준이 권력 앞에서만 작아진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60대는 “슬슬 정리해야 할 인력”이 된다.
국회에서 60대는 “이제 막 한창”이라는 말을 듣는다.
직장인은 나이 때문에 퇴장한다.
정치인은 나이 덕분에 버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식 정년의 민낯이다.
정년은 노동자를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니다.
조직과 권력을 위해 노동자를 일정 나이에 잘라낼 수 있게 해주는 도구였다.
정년 연장을 진지하게 논의할 생각이 있다면,
정년이 없는 정치부터 먼저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
상한 연령 논의든,
청년 의무 공천 비율이든,
특정 연령 이상 연속 출마 제한이든,
형식이 무엇이든 좋다.
“정년은 국민에게만 있다”는 지금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국민에게만 더 오래 일하라고 말할 자격은 없다.
정년이 필요한 쪽은 국민이 아니다.
정년이 필요한 쪽은,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