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
오늘, 화면을 넘기다 한 문장을 보았어.
이 나라에는 이천만 명의 전과자가 있다고, 한 시인이 적어놓았더라.
소년원 근처 안 가본 청춘이 어디 있냐고, 사람은 변하고 성장하는 존재라며,
누군가의 과거를 너무 쉽게 돌로 치지 말라고.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그 거대한 숫자에서 밀려나 버린 한 사람처럼 느껴졌어.
소년원 근처 한 번 가본 적 없는 나,
그렇다고 깨끗하게 살아서 떳떳한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닌 나.
나는 단지,
누군가의 학폭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평생 지워지지 않는 각인처럼 살아왔을 뿐인데.
그의 문장은 아주 세련된 칼날처럼 느껴졌어.
철학자의 이름 몇 개, 종교의 언어 몇 줄로 광을 낸 칼.
그 칼은 가해자의 등에 박혀 있던 무게를 조금 덜어주는 대신,
피해자의 가슴에 남아 있던 작은 꿰매진 자국을 다시 찢어 열어버리는 글이었어.
이천만 전과자, 라고 말할 때 그 숫자 안에는 분명 학폭 가해자들도 섞여 있겠지.
아이들을 계단 밑으로 떠밀고,
화장실에 가두고,
단체 채팅방에서 이름 없는 조롱으로 한 사람을 해체했던 기억들.
그들 중 몇몇은 지금,
잘나가는 직장인이 되어 있을 테고, 얼굴을 알 수 없는 유명인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텔레비전 속에서, 강연장 위에서, SNS의 무대 위에서
유창한 말로 성공을 이야기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피해자였던 누군가는
여전히 밤마다 이불 끝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을 거야.
학교 앞 골목 냄새만 맡아도
심장이 먼저 과거로 뛰어가는 사람들,
어른이 되었지만 중학생 시절 사진만 보면
목이 조여오는 사람들.
그런데 지식인이라는 사람들, 엘리트라는 사람들은
이상할 만큼 한 방향으로만 유려해.
가해자에게는 “청춘의 실수”, “한때의 일탈”, “이미 충분한 반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피해자에게는
“이제 그만 잊어라”, “너도 너의 삶을 살아라”라고 말하지.
그 말 속에는 “우리가 봐야 할 건 그의 현재이지, 과거가 아니다”라는 논리가 숨어 있고,
그 현재를 만들기 위해
누가 짓밟혔는지는 좀처럼 꺼내지 않아.
나는 소년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야.
교무실 앞 복도에서, 보건실 침대 위에서,
화장실 거울 앞에서 마음만 수없이 탈출을 시도해봤던 사람.
누군가는 ‘전과자’라고 법이 적어놓은 사람이고,
나는 ‘피해자’라는 단어조차 공식 문서 어디에도 남지 않은 채
그냥, 조금 예민한 아이, 약한 아이로 기록된 채
시간만 흘려보낸 사람.
그래서 어떤 시인의 “이천만 전과자”라는 말이
나에게는 이렇게 들려.
이 나라의 죄를 너무 쉽게 한꺼번에 묶어
숫자로 할인해버리는 주문처럼.
“다들 그런 실수쯤은 한다”는 말 뒤에
소리 없이 삼켜진 수많은 밤들의 떨림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정리되어 버리는 것처럼.
누군가는 말하겠지.
인간은 변하고 성장한다고,
두 번째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맞아, 그 말 자체를 부정하고 싶진 않아.
다만 나는 묻고 싶은 거야.
누군가의 두 번째 기회를 말할 때,
왜 항상 첫 번째 피해자의 가슴은 계산에서 빠지는지.
우리가 용서를 말할 때,
왜 그 용서의 비용을 언제나 피해자의 심장에게만 청구하는지.
오늘 나는,
칼처럼 쓰인 글 한 줄 앞에서
내 가슴 속 오래된 멍울을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수십 년이 지나도 모양을 바꾸지 않는 응어리.
그 위를 지나가는 사회의 말들이,
지식인의 문장들이,
시인의 비유들이
얼마나 쉽게 나를 다시 과거로 밀어 넣는지.
이천만 전과자라는 말 대신
나는 다른 숫자를 떠올려 본다.
단 한 번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한 사람의 수,
단 한 번도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지 못한 아이들의 수,
단 한 번도 자기 편이 되어주는 어른을 만나지 못한 청소년들의 수.
그 숫자는 통계에도, 기사에도, 시인의 문장에도 실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 시가 아니라 기록을 쓴다.
가해자의 현재를 변호하는 글이 아니라,
피해자의 과거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뛰고 있다는 사실을 적어둔다.
누군가의 서랍 속에 고이 접혀 있는 반성문보다,
평생 접히지 않는 피해자의 가슴앓이를 먼저 보는 나라였으면 좋겠다고,
나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소년원 근처에도 못 가본 예외적인 인간”이 아니라,
당연한 삶을 산 보통 사람으로 인정받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오늘 내 심장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말하고 있어.
용서는 언젠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일지 몰라도,
기억과 상처는
당신들의 멋있는 문장 아래에서
당연히 희생되어야 할 문장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