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선 속의 이슈
외교는 원래 “친미냐, 친중이냐” 같은 구호로 굴러가지 않는다. 국가가 움직이는 언어는 감정이 아니라 비용과 위험, 그리고 손익계산서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의 대중(對中) 접근이 “실리”라는 포장만 남긴 채, 정작 그 계산서를 국민 앞에 펼쳐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근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문화 교류를 “질서 있게” 재개·확대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Reuters)
정부는 말한다. 교류는 국익이고, 완화는 경제다. 하지만 국익은 ‘좋아 보이는 장면’이 아니라 ‘관리되는 리스크’ 위에서만 성립한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간단하다. 교류를 확대할수록 커지는 취약점에 대해, 정부는 무엇을 어떤 조건으로 잠그고 있는가.
첫째, ‘나눔’과 ‘공유’라는 수사로 포장되는 순간, 국가안보의 기본 문법이 흔들린다. 사이버와 데이터는 오늘날 외교의 부록이 아니라 전장(戰場)이다. 우리 정보당국조차 중국계 AI 서비스가 개인 데이터를 과도하게 수집하고 중국 서버로 전송할 수 있다는 취지의 경고를 공개적으로 내놓은 바 있다. (Reuters) 기술·문화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접점이 늘어날수록, 데이터 흐름과 공급망, 플랫폼 의존의 구멍도 함께 커진다. 그 구멍을 막는 장치가 “선제적으로 마련돼 있다”는 설명 없이 교류만 확장하는 건, 외교가 아니라 방임에 가깝다.
둘째, 인적(人的) 개방의 문제다. 정부는 2025년 9월 29일부터 2026년 6월 30일까지 중국 단체관광객을 대상으로 한시적 무사증(비자 면제) 입국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외교부) 관광 활성화라는 목적은 이해한다. 그러나 치안은 ‘목표’가 아니라 ‘조건’이다. 무사증의 편익을 말하려면, 그에 따라 늘어날 수 있는 불법체류·범죄·사회적 갈등 비용을 어떤 데이터로 추정했고, 어떤 인력과 시스템으로 상쇄할지까지 동시에 제시해야 한다. “대부분은 선량한 관광객”이라는 말은 정책이 아니다. 선량함은 가정이고, 국가는 최악의 경우를 기준으로 설계를 한다.
셋째, 더 노골적인 지점은 ‘상호주의’다. 우리는 중국 시장에서 문화·플랫폼·여론·검열의 벽을 숱하게 경험해 왔다. 그런 상대와의 관계 개선이 진짜 실리라면, 조건은 분명해야 한다. 한국 콘텐츠의 안정적 유통, 기업의 공정한 경쟁, 기술·데이터의 안전장치, 분쟁 시 구제 절차 같은 구체적 조항이 따라붙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들리는 것은 “점진적 확대” “실무협의” 같은 말뿐이다. (Reuters) 외교에서 ‘점진’은 종종 ‘검증 없는 선(先)양보’의 다른 표현이 된다.
넷째, 안보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휴전국이고, 북핵 위협은 진행형이다. 이런 조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건 필요하지만, ‘정서적 친교’처럼 연출하는 순간 정치적 메시지가 된다. 더구나 최근 군 정보 유출 의혹 사건에서 중국 국적(혹은 중국 측 인물)과의 접점이 거론되는 등, 방첩·보안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경고등이 켜진 적도 있다. (Reuters) 정부가 진짜 실리를 말하려면, 이 불편한 리스크들에 대해서도 같은 크기의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친중’이냐 아니냐의 프레임이 아니라, 국가가 스스로 만든 취약점을 어떤 계약과 규제로 통제하고 있는지의 문제다. 정부가 대중 정책을 추진할수록 더 투명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느 산업이 얼마를 벌고,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양보했고, 그 과정에서 늘어나는 안보·치안 비용을 어떻게 상쇄하는지. 국민이 요구하는 건 반중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리스크를 숫자와 제도로 봉인하는 국가의 기본기다.
외교는 쇼가 아니다. “실리”를 외칠수록 실리는 더 차갑게 증명돼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검증이고, 선언이 아니라 조건이며, 분위기가 아니라 안전장치다. 정부가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실리’는 국민을 위한 계산이 아니라 권력이 편한 계산으로 의심받는 게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