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선 속의 이슈
사과가 아니라 ‘면피의 문법’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계엄’ 발언 논란과 뒤늦은 사과는, 새삼 놀랍기보다 익숙하다. 한국 정치에서 사과는 오래전부터 “잘못을 인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파장을 관리하는 기술”로 훈련돼 왔다. 이번 장면은 그 교과서에 가깝다.
장 대표는 2025년 12월 22일 국회 필리버스터에서 “계엄이 곧 내란죄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고, 12·3 비상계엄이 “사실상 2시간 만에 종료”됐다는 점을 들어 논리를 쌓았다.그 ‘설명’은 곧장 논란이 됐다. 민주주의에서 계엄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다. ‘몇 시간짜리였느냐’는 말은, 칼이 잠깐 목에 닿았으니 괜찮았다는 식의 위험한 자기합리화로 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2026년 1월 2일. 장 대표는 기자들의 계엄 관련 질문에 “반복해서 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로 불쾌감을 드러냈고, 질문 자체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뉘앙스까지 덧붙였다. 국민이 묻는 이유는 단순하다. ‘권력’이 헌정 질서를 흔드는 순간, 정당이 어디에 섰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질문을 “그만하라”고 밀어내는 태도는 사과의 출발선에 서 있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그런데 불과 닷새 뒤인 1월 7일, 장 대표는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이었다”며 사과로 방향을 틀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 사과는 단어만 있고, 내용이 없다. 위헌·위법성에 대한 판단은 비켜 갔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도 명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깊이 사과’라는 문장은 남는데,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문장은 비어 있다. 사과의 본질은 감정 표현이 아니라 책임의 구조를 다시 세우는 일인데, 그 핵심이 빠지니 사과는 ‘정치적 포장지’가 된다.
결정타는 그 다음 날이다. 1월 8일 국민의힘은 ‘계엄 옹호 이력’이 거론되는 인사를 지명직 최고위원에 앉히고, ‘김건희 옹호’ 논란이 있는 인사를 윤리위원장으로 임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과가 하루 만에 인사로 무력화된 셈이다. 정치에서 진심은 마음속에 있는 게 아니라, 손에 쥔 인사권과 당 운영에서 드러난다. “계엄은 잘못”이라 말해놓고, 그 문제의식과 반대 방향으로 당의 얼굴을 세우면, 사과는 반성이 아니라 ‘위기관리 멘트’로 확정된다.
국민이 피로한 이유는 사과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사과가 너무 많아서다. 더 정확히는, 사과는 반복되는데 책임은 갱신되지 않아서다. 장동혁 대표의 이번 사과가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까닭도 동일하다. 한 달 전엔 ‘내란과는 다르다’는 논리로 불을 키웠고 , 닷새 전엔 “그만 묻는 게 바람직하다”며 질문을 탓했고 , 어제는 “잘못된 수단”이라 사과했고 , 오늘은 그 사과를 무색하게 만드는 인사를 단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흐름을 보고도 “진정성”을 말하긴 어렵다.
사과가 정치의 자동응답이 되는 순간, 국민은 분노조차 아끼게 된다. 남는 건 냉소다. “또 그 패턴이네”라는 체념. 그리고 그 체념이 쌓이면, 정당이 잃는 건 지지율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신뢰다. 사과는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권력 사용 방식부터 바꾸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논란 때도 또다시 같은 장면이 반복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