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선 속의 이슈
본질을 바꾸지 못할 때 정치가 가장 쉽게 꺼내 드는 카드는 ‘간판’이다. 국민의힘이 5년 만에 당명 변경 절차에 착수했다. 책임당원 ARS에서 찬성 68.19%가 나왔고, 공모와 당헌 개정을 거쳐 다음 달 새 이름을 확정하겠다는 로드맵까지 내놨다. 당 대표 장동혁은 ‘쇄신’의 한 축으로 당명 개정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 장면이 낯설지 않다는 데 있다.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을 거쳐 ‘국민의힘’까지—한국 보수정치의 이름 바꾸기는 위기의 언어가 아니라 관성의 언어에 가깝다. 이름을 바꾸면 프레임이 바뀌고, 프레임이 바뀌면 책임이 희미해진다고 믿는 순간, 정치는 스스로를 ‘광고’로 착각한다.
정무감의 추락은 여기서 시작된다. 시민은 정치의 상표가 아니라 성적표를 본다. 공천 시스템은 공정해졌는지, 극단적 언어와 혐오 동원은 줄었는지, 정책은 계파가 아니라 데이터와 현실을 따라가는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책임지는 방식이 달라졌는지—그런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데도 ‘새 이름’만 던지면, 유권자는 또다시 “덜 아픈 처방으로 시간을 벌려는구나”라고 읽는다. 실제로 당 안팎에서도 간판 교체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지능이 떨어진다는 건, 복잡한 문제를 풀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를 풀 의지가 ‘이미지 관리’에 밀릴 때, 그게 지능의 실종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이름을 바꾸는 일은 쉽다. 그러나 이름이 바뀌는 순간에도 사람과 구조가 그대로라면, 바뀌는 건 잉크뿐이다. 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다음 선거를 향한 계산기가 먼저 돌아간다면, 국민은 더 빨리 학습한다. ‘개혁 없는 개명’은 변신이 아니라 회피라고.
지금 한국정치의 수준을 가르는 기준은 수사가 아니라 비용이다. 당명 변경이 실제로 값어치를 하려면, 내부의 인적 쇄신과 정책 재정렬, 책임의 방식까지 함께 내놓아야 한다. 답이 ‘아니오’라면 새 이름은 새 출발이 아니라, 낡은 체질을 숨기기 위한 새 포장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포장지를 뜯는 건 언제나, 출근길과 생계의 시간표를 사는 시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