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요한 틈에서
“천만번의 말들보다 단 한 번의 침묵이 가져오는 감각과 무게는 무시할 수 없다.”
제주의 돌담 너머로 바람이 불어오면, 돌들은 아무 말 없이 그 바람을 견딥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조심하자"라고 다짐하지만, 정작 그 말이 멈춰야 할 때를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타인의 사정을, 그 깊은 속내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없으니까요.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내 무게를 기대려는 마음이 앞서곤 합니다.
어느 날, 오일장 근처에서 무거운 짐을 이고 가던 할망(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힘든데 요 앞까지만 들어줘."
'요 앞'이라는 말에는 거리의 척도가 없습니다. 그저 굽이진 길 어딘가일 그 막연한 곳을 향해 짐을 받아 듭니다. 땀이 흐르고 숨이 차오르지만, 짐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등 뒤로 건네지는 투박한 고마움. 그 순간 오가는 것은 화려한 언변이 아닌, 서로의 온기를 짐작하는 침묵의 대화였습니다.
“맘이다. 침묵은 맘이다. 차마 꺼내어지지 못하고 뭇매 속에서 서성이다 튀어나오지 못하는 말들.”
말을 꾸미는 수식어는 세상에 차고 넘치지만, 침묵을 설명할 단어는 귀합니다. '침묵은 금'이라는 옛말, 어릴 적엔 그저 흘려들었던 그 말이 이제는 두 아이의 아비가 되고 나니 가슴 언저리를 뻐근하게 누릅니다. 말하지 않아서 더 사무치는 것들, 삼켜야만 비로소 전해지는 진심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침묵보다 더 나은 말이 있을 때만 입을 열라"(마하트마 간디)
하지만 우리는 침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웅변을 배우고 발표를 연습하며 소리를 내는 법만 익혔을 뿐, 입을 다물고 마음을 여는 법은 교과서에 없었습니다.
영화 <줄스(Jules)>를 보셨나요? 외계인의 우주선이 노인들만 사는 적막한 마을에 떨어집니다. 말 한마디 없는 그 외계인은 그저 우주를 닮은 깊은 눈으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아무런 판단도, 조언도 없이 그저 끄덕이는 그 존재.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스며드는 그 과정은 기이하게도 낯설지가 않습니다. 때론 백 마디 위로보다, 가만히 곁을 지키는 존재의 숨소리가 우리를 살게 하니까요.
"음악은 음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표와 음표 사이의 침묵 속에 있다." (드뷔시)
우리네 삶도 그러합니다. 아이들이 꺄르르 웃으며 떠들던 시간이 지나고 찾아오는 고요, 아내의 잔소리 뒤에 숨겨진 걱정 어린 정적. 그 사이사이에 진짜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 세월의 때가 묻는다는 것은 어쩌면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그 '사이'를 견디고 채우는 침묵의 노련함을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말로써 상처를 주고, 침묵을 무능이나 바보스러움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쉴 새 없이 감정을 토해내는 세상 속에서 입을 다무는 것은 외로운 싸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침묵이 누군가에게는 쉼터가 되기를. 당신이 삼킨 그 말들이 썩지 않고 발효되어, 언젠가 따뜻한 위로의 향기로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천만 번의 말보다 무거운 단 한 번의 침묵. 오늘 밤은 그 고요한 무게를 가만히 안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