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바람의 향기, 방베르Vent Vert EDT
“선을 행하는 자는 항상 선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항상 악하며,
성실한 사람은 항상 성실하고 허망한 사람은 항상 허망한 것이다”
꼬불꼬불한 밀림의 산악 길에서 만난 원시의 부드러운 녹색 바람은
세상의 모든 냄새를 내게 부수어 스며들게 한다.
그 기억 속에 남겨져 있던 차밭, 숲과 언덕 그리고 계곡의 향기는
자신을 파괴한 문명에게 태고의 바람으로 응징할 것 같다.
1947년 역사상 처음으로 선보인 혁신적인 향수 피에르 발맹Pierre Alexandre-Claudius Balmain의 방베르vent vert(녹색바람)는 고귀함의 상징인 갈바눔Galbanum이 최초로 다량으로 사용된 그린 플로럴 계열의 향수이다.
방베르는 상쾌하고 초록빛이 가득한 순수하고 자연 친화적이다.
탑노트는 시원한 녹색의 바람을 담은 라임, 오렌지블로섬, 피치, 바질, 레몬, 베르가못, 네놀리 등 뜨거운 열대과일과 녹색의 잎으로 상큼함을 선물하였고, 미들노트는 바이올렛, 프리지어, 재스민, 히야신스, 릴리오브드밸리, 로즈, 갈바눔, 마리골드와 스파이스를 하나로 묶어 여인의 우아함과 달콤함, 그리고 톡 쏘는 여심까지도 표현하였다.
베이스노트는 아이리스, 샌들우드, 앰버, 머스크, 오크모스, 세이지, 베티베르, 세다 우드, 스타이어랙스Styrax (때죽나무) 등의 조합으로 태고의 깊고 오묘한 향을 거친 바람과 함께 날려 보낸다.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발맹은 1914년 프랑스의 생장드모리엔Saint-Jean-de-Maurienne에서 태어난 1934년 에드워드 몰리뇌와 함께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다.
1939년 뤼시앙 르롱 밑으로 가서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함께 일했는데 그들은 전후시대의 전성기에 서로 경쟁자가 될 운명에 있었다.
1945년 설립된 '발맹 하우스'는 금방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그가 만든 야회복은 여성스러움과 위엄 어린 우아함을 결합한 것으로 최고급품이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 발렌시아가 등과 함께 1950년대의 모더니즘 엘레강스 패션을 리드하였다.
고급스러운 소재 사용과 단순해 보이지만 완벽한 이음새로 표현된 그의 디자인은 절제된 수공예적 디테일이 가미되어 구조적이면서 엘레강스한 럭셔리 패션을 창조해 나갔다.
그는 급속히 사업을 확장하여 뉴욕시와 카라카스에 지점을 내고 업종을 넓혀 향수와 장신구에도 관여했다.
발맹은 1947년부터 향수 개발을 시작하였고, 그는 다소 이질적인 고전과 우아함 모두를 향수에 담기 원했다. 당시에는 지극히 파격적적이고 신비로운 향수였던 방베르vent vert는 전설적인 조향사 제르멘 셀리에Germaine Cellier가 창조하였다.
사실, 이 향수는 1991년 세계적인 향료 제조업체인 지보단Givaudan사의 조향사 칼리스 베커Calice Becker에 의해 재창조되었으나, 그의 또 다른 포뮬라(처방전)로 1999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른다.
녹색바람은 방베르뿐만 아니라 한 여인을 생각나게 한다.
그녀는 에드워드 존 포인터Edward John Poynter의 Pea Blossoms완두콩 꽃들 (1890)의 모델이다.
그림 속에 여인은 매우 사실적인데, 사실적이라는 것은 실존적인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사실적인 초상만이 아니라 다소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상상 속의 인물과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포인터가 창조해낸 인물들은 마치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그림 속에만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림 속의 그녀는 아름다움을 스스로 찾아낸 것일까?
아니면 화가가 아름다움을 드러내 화폭에 담은 것인가?
어쩌면 포인터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찾아 화폭에 재생해 놓는 연금술사일지도 모른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녹색바람을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하나의 공간에 존속시키는 발맹의 방베르처럼.
Olfactory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