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여인과 향기

13화. 석류의 향기, 베르사체 브라이트 크리스털 EDT

모든 냄새는 바람이 불면 쉽게 흩어지고, 물체에 부딪히면 그곳에 배이게 된다.
닭의 홰나 돼지우리엔 닭과 돼지의 냄새가 있고,
용과 뱀의 굴에는 용과 뱀의 냄새가 난다.
어진 사람이 사는 방엔 난초와 지초의 냄새가 있고,
어둡고 어리석은 이가 사는 방엔 혼탁한 냄새가 있다.
하지만 가구나 책상, 병풍이나 장막에 배는 냄새 또한
그 주인에 따라 냄새의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진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뿐 소리가 없다.
오직 석류의 선홍빛과 냄새만이 좁은 공간을 메우며 베네치아의 밤은 깊어만 간다.




석류는 원래 아프가니스탄 서북부에 자생하던 식물이다.

유럽에서 오래전에 전파되어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과실로, 5세기경에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다가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잘 익으면 그 터진 틈 사이로 루비와 같은 알맹이가 보인다.

색과 향이 좋으며, 열매 자체가 마치 농익은 여인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석류를 오래전부터 포도·무화과와 더불어 귀한 과실로 여겨왔다.

성경의 아가서를 보면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아가서 4:3)라고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에게 말한다.

여인의 아름다운 뺨을 석류라는 한 단어로 모든 것을 표현하였던 것이다.




패션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는 1997년 앤드류 커나난에게 피살되기까지 이탈리아 패션계의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26세 때인 1972년 밀라노에 등장하여 발렌티노, 에르메네질도 제냐 등 유명 패션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했다.

1978년 ‘지아니 베르사체’라는 이름으로 독립한 후 로마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의 얼굴을 형상화한 상표는 세계 패션계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특히 베르사체라는 브랜드로 만들어진 향수는 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지금껏 출시된 강력한 베르사체 향수와는 달리 여성의 부드러움을 표현한 베르사체 브라이트 크리스털 오드 투왈렛Versace Bright Crystal Eau de Toilette은 석류 향을 메인으로 시원하면서도 활기가 넘치는 프루티 플로럴 계열의 향수로 탑노트는 석류와 유자, 아이스어코드로 이루어져 상큼하고 깔끔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미들노트는 목련, 작약, 연꽃의 화려함으로 펼쳐가며, 베이스노트는 머스크가 전체적인 향기의 가벼움을 진중함으로 균형을 맞추어간다.

이것은 마치 탄산의 시원함과 레드벨벳의 섹시함이 어우러지는 샴페인 같다고 할까?


향수병 뚜껑은 베르사체의 상징인 메두사가 새겨져 있고 그 위를 크리스털 같은 막이 덮여있다.

물론 플라스틱 재질이라서 보석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빛의 굴절에 따라 다양한 색상이 흩뿌려지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오래전 베네치아의 거리를 걷다 길가에서 만난 석류나무.

그곳에서 만난 뜻밖의 기억은 어릴 적 우리 집 정원에 있었든 만개한 석류의 향기를 맡으며 아득히 묻혀 있던 내 과거의 시간으로 이끌어 갔던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베네치아와 석류를 위젠느의 그림에서 또 한 번 만난 것은 어쩌면 숙명과도 같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위젠느 드 블라스Eugene De Blaas의 석류를 든 소녀Girl with Pomegranates.

여인은 별 표정이 없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내면의 미소가 가득해 곧 폭발해버릴 것 같다.

가지런한 눈썹, 큰 눈, 오뚝한 코와 콧날, 그리고 굳게 다문 아름다운 입술에서 청순함과 지혜로움이 느껴지며, 막 날기 직전의 독수리와 같은 웅장함과 거룩함마저 들게 한다.

이 여인이 들고 있는 석류는 터지기 직전으로 마치 막 열기 시작한 브라이트 크리스털 향수병같다.
위젠느 드 블라스Eugene De Blaas의 석류를 든 소녀Girl with Pomegranates


후각의 기억은 어떤 감각의 기억보다도 뚜렷하고 오래간다.


Olfactory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