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둔역의 겨울
추억은 매개를 필요로 한다. 보통의 기억은 세월과 함께 묻히고, 특별한 기억만이 추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이 특별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마법은 아주 사소한 무언가에 의해서다.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글, 코를 스치는 향기, 서랍 속에서 튀어나온 무엇, 우연히 마주친 어느 곳(것) ……. 그게 무엇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강렬한 추억은 없지만, 이름만으로 알 수 없는 그리움을 자극하는 장소도 있다. ‘간이역’도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간이역에 대한 추억은 없다. 기차여행조차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런데도 묘하게 간이역 하면 무언가 있는 듯 아련함이 먼저 밀려온다.
간이역의 사전적 의미는 ‘역무원이 없고 정차만 하는 역’이다. 그러나 보통은 작은 역을 통틀어 간이역이라고 부른다. 이 작다는 소박함에 더해 역의 배경이 되는 작은 마을, 소읍이 고향의 향수를 자아내는 것은 아닐는지. 고향을 떠나온 혹은 잃어버린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작은 문, 고향과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기억의 통로가 어쩌면 간이역일지도 모르겠다.
구둔역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은 것은 2012년 12월 초였다. 그해 9월인가, 중앙선 복선전철이 남원주까지 새롭게 개통되면서 구둔역은 문을 닫았다. 철길이 역을 우회해 새롭게 개설되면서 구둔역은 변신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많은 간이역이 한때 지방의 번화한 명소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오래도록 지방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나 그 장면들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구둔역은 일제 말기 무렵인 1940년 문을 열었다. 이후 1996년 이전까지 활기가 넘치는 꽤 번화한 역이었다. 그러다가 1996년부터 하루 상하행선 6차례만 서는, 이름 그대로 간이역이 됐다. 그리고 2012년 역으로의 역할에서도 완전히 은퇴하고 말았다.
흔히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한다. 구둔역은 그렇게 새 옷을 입고 다른 배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2006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역사를 비롯한 시설물들과 좌우 철길 300m를 보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구둔역을 찾았을 때는 그 공사가 마무리될 무렵이었다.
그렇게 만난 구둔역은 코끝 아리는 추위와 흰 눈을 첫인상으로 남겼다. 그 풍경에 반해 이리저리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던 수고로움의 결과는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지금껏 여행하며 만난 간이역이 몇 개쯤 더 있었던 것 같다. 얼핏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간이역의 모습은 대부분 구둔역과 닮아 있었다.
숱한 장미들 가운데서 자신에게 속한 한 송이 장미의 특별함을 이야기하던 어린왕자의 마음처럼, 구둔역은 그렇게 한 장의 사진으로 특별한 장소가 됐다.
어느덧 10년이 지났고, 사진 속의 모습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사이 비슷한 관계를 맺은 사람의 수도 엄청나게 많이 늘었을 터다. 그들이 기억하고 추억하는 구둔역은 사진 한 장의 기억이 아닐 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명소로, 어떤 사람은 영화마을의 세트로 구둔역을 기억할 수도 있다.
그들에 비해 내 추억은 보잘것없다. 그저 사진 한 장에 얽힌 이야기를 두서없이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니. 하지만 문득 10년은 더 젊었을 그때, 그 장소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는 궁금함이 남는다. 여전히 시답잖은 사진타령이나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오늘 그 사진을 보며 흐뭇해하는 것을 보니 좋긴 좋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