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만진 코끼리 다리

런던아이 야경 아래서

by 이우형
브리티시에어웨이(British Airway, 영국항공)가 1999년 밀레니엄을 기념해 만든 대관람차. 높이 135m로, 대관람차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다.


런던 방문은 독일 출장의 연장이었다. 두 나라의 신재생에너지산업 현장을 방문해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임무였다.

취재로 떠난 출장은 늘 방문해야 할 장소와 인터뷰 일정 탓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출장은 단 두 곳만 방문하면 되었고, 인터뷰 역시 제한적이라 다른 출장과는 달리 여유가 있었다. 그렇더라도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박 3일에 불과했다.

도착하는 날 가이드의 권유로 옥스퍼드를 방문했고, 다음날 찾은 곳이 출장의 목적지인 영국 서튼(Sutton)지구 왈링톤(Wallington)에 위치한 베드제드(BedZED)였다. 이곳의 이야기는 당시 기사로 소개되었고, 관심 있는 사람들만 좋아할 내용이라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베드제드를 방문한 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런던 시내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유명한 영국의 펍(Pub)을 방문했다. 후배는 본토에서 기네스(Giinness)를 마셔야 한다며 출발 때부터 노래를 부르다 주문했고, 세트처럼 피쉬 & 칩스(Fish & Chips)도 곁들여졌다. 우리가 방문했던 펍은 유서 깊은 펍은 아니고, 조금은 현대화(?)된 곳이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어울려, 어깨와 등이 닿을 정도로 북적였지만, 분위기는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런던아이(London Eye)는 이 분위기 끝자락에 만난 풍경이다. 타 보질 못했으니 말 그대로 풍경이다. 주차가 힘든 곳이라 가이드는 우리를 내려놓고 30분 뒤에 보자며 사라졌다. 거기서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화장실을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 두 가지를 다 해 봤다. 인근의 화장실을 짧은 영어로 겨우 물어 찾아갔고, 컴컴한 어둠 속에서 어렵사리 사진도 촬영했다.

사진의 런던아이는 ISO1600에 조리개 f=2.8, 셔터 스피드 1/10초로 촬영했다. 15mm 광각이 아니었다면 손으로 들고 촬영할 엄두도 못 냈을 터였다.

출장으로 떠난 여정이 끝난 뒤 기사에 쓸 사진을 정리하고, 다른 사진들은 오랫동안 잠들었다. 해마다 한두 번 하는 사진 폴더를 정리하다가 옛 생각 폴폴 날리는 런던출장 폴더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런던아이 사진을 봤을 때 어찌나 생소하던지, 직접 촬영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들이 슬금슬금 망각을 걷어내고 모습을 드러냈다.

폴더 속에는 런던시청, 런던 브리지, 의사당과 빅벤, 웨스트민스터사원 등등 런던에서 꼭 만나야 할 랜드마크가 대부분 담겨있었다. 그런데도 런던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여행이 아닌 구경을 했던 탓일 것이다. 눈 감고 만진 코끼리 다리처럼.

런던아이의 높이가 135m란 것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관람차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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