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성 유감(有感)
성벽의 문이라기에는 너무 소박하다. 문짝도 문루도 없이 그냥 성벽의 한쪽을 열어 놓고 돌 하나 얹어놓은 구조다. 그나마 온전해 보이는 동문조차 문 위에 돌을 얹고 다리 마냥 그 위로 다닐 수 있게 길을 낸 정도다. 그 모습이 마치 다른 성곽의 암문처럼 보인다. 게다가 동문 위에는 ‘해탈의 문’이라 쓴 문패가 떡하니 붙어 있다. 성문이 아니라 문 안쪽에 바로 붙어 있는 사찰의 입구인 양.
독산성(禿山城)의 모습이다.
독산성은 집 가까이 있어 가끔 산책 삼아 찾는 곳이다. 규모가 크지 않아 한 바퀴 도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다. 독산성이 있는 독산(禿山)은 오산시 지곶동에 위치한 높이 208m의 아담한 산이다. 이름에 대머리 독(禿)을 쓰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민둥산이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성곽길 주변을 빼고 산 전체에 숲이 우거져있다. 산 중턱에는 산림욕장까지 조성되어 있다.
1592년 12월 말, 이 작은 산성에 약 1만 명 가까운 군대가 주둔한다. 권율 장군이 남도에서 모집한 근왕병이었다. 앞서 그해 8월, 권율 장군은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과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의 경계에 있는 이치(梨峙), 일명 배고개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독산성에 머물며 전황을 살피던 권율 장군 앞에 2만 명의 왜군이 나타났다. 조선군은 전면전을 피했다. 대신 소수 병력을 이용한 게릴라전으로 왜군을 괴롭혔다. 약 보름 정도 이어진 전투는 일본군이 후퇴함으로써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독산성의 승리는 얼마 뒤 이어진 행주대첩의 발판이 된다.
산 정상부에는 1957년 복원된 세마대(洗馬臺)가 있다. 권율 장군이 성안에 물이 풍족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쌀로 말을 씻어 왜군의 사기를 꺾고, 퇴각하게 만들었다는 전설이 담긴 정자다. 지금은 소나무 숲에 가려 산 아래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정자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산 아래에서 보면 그저 흔한 동네 뒷산처럼 보이지만, 독산성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비로소 전략요충지임을 깨닫게 된다.
독산성은 지금까지 대략 대여섯 번 정도 올랐다. 중학교 때는 소풍으로, 이사 온 후로는 나들이 삼아 찾았다. 그저 세마대의 전설 정도로만 알고 올랐는데, 취재 기사를 쓰게 되면서 제대로 공부한 적이 있다.
백제 시대부터 신라를 거쳐 조선의 정조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가 이 작은 산성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성안에 있는 허름한 사찰 보적사의 역사가 성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렇게 알게 됐다.
무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개인적으로 생각이 조금 더 진중해진 정도랄까. 하긴 선사시대를 포함해 5,000년 역사가 담긴, 넓지 않은 한반도 어느 곳인들 사연이 스며들지 않은 땅이 있으랴.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마주하는 주변에 별 관심이 없다. 모교가 화성의 성벽 바로 안쪽에 있고(초중고 모두 그랬다), 등굣길이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었지만, 그게 뭐? 한때 서울 필동에 사무실이 있었지만 남산 케이블카를 타는 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당연히 서울타워도 올라가 보지 않았다.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꼭 멀리 가야만 여행은 아닌 듯하다. 가보지 않은 먼 곳을 동경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일 터. 그래도 주변의 소중함에 대한 무지는 아니다 싶다. 그래서일까? 보내버린 시간이 늘어날수록 주변을 더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독산성 성벽 위에 서서 바라보는 우리 동네가 정겹다. 멀리 새로 세워진 동탄의 마천루를 성문 속에 가둬버리는 치기도 부려본다.
그나저나 권율 장군은 정말 쌀로 말을 씻겼을까?
2017년 5월, 우연히 사진을 가르치게 된 초등학교 동창생 제자들과 함께, 사진여행 차 찾은 독산성에서 마주친 감정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