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zone 두 번째 이야기
도넛을 주제로 한 전시였다. 도넛을 도자기와 비슷한 소재로 직접 만들어 자신의 예술을 표현한 전시였다. 같이 보러 간 디자이너와 예술가는 이걸 보면서 완성도의 감탄하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었다. 나 또한 작품의 직관성과 대중성에 감탄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어? 이거 텐바이텐(디자인 굿즈, 디자인 소품 플랫폼)에서 2만원에 팔아도 잘 팔리겠는데?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이 상품으로써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전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작품은 예술 창작활동으로 얻어지는 제작물이고, 상품은 사고파는 물품. 장사로 파는 물건. 또는 매매를 목적으로 한 재화이다. 작품은 작가의 생각에서부터 시작되고, 상품은 시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작되는 곳이 다르다.
그러한 의문을 품고 공존(0 zone) 팀원 그리고 게스트와 카페를 가서 이 도넛 피어의 프로덕트는 상품일까, 작품일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러한 모호한 것들의 경계를 더 명확하게 규정하고 싶어 이야기를 통해 낸 결론은 이거였다.
도넛 피어 전시에서 작가의 인터뷰를 담은 작업 영상이었다. 그중에서 한 장면이 있었다. 작가의 손에는 바로 전시해도 손색이 없는 도넛이 들려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완벽해 보이는 그 도넛을 망치로 깨버렸다. 대중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작가에게 보이는 작은 흠은 그의 작품의 조건에 충족되지 않았다. 마치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의 마스터피스를 깨는 도자기 장인 같았다. 상징적인 행위였다.
상품은 컴플레인이 들어가지 않을 미세한 흠은 넘어간다. 주변에 사업하시는 분들도 흠이 있는 상품을 소비자 불만 또는 교환을 요구할 정도의 흠인가로 폐기와 판매를 구분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 도넛이 상품이 아니라, 저만의 작품입니다."라는 말을 그의 도넛을 깸으로써 보여줬다.
젊은 디자이너나 작가들이 모여있는 디자인 엑스포를 갔을 때였다. 작품을 가져온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부스 안에 상주해있었다. 전시되어있는 디자인에 흥미를 느껴 작가들에게 말을 걸었다. 말 걸 때마다 한결같은 특징이 있었다. 일단 질문을 하면 눈을 반짝이는 거로 시작한다. 그리고 디자인을 왜 이렇게 만들었고, 당시 어떤 감정이었는지 정말 애정 담아 이야기해준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해 관객과 소통하는 행위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디자인 엑스포를 가면 기업체도 꼭 참가한다. 기업체에서는 해당 디자인을 직접 만든 사람이 아니라, 홍보팀이라든지 막내들이 보통 상주해 있다. 기업체 부스에서 사고 싶은 엽서 세트가 있어, 유심히 보며 살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직원이, 해당 제품이 지금 할인 중이고, 몇 개의 엽서가 들어있다는 것과 같이 세일의 언어를 건넸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가져온 디자이너와 달리 프로덕트에 대해 물어보면, 고객관리 차원의 전화 상담원과 대화하듯 사무적이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관점에서 나는 상점에서 상품을 사러 온 고객이었고, 젊은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품을 보러 온 관람객이었던 것이었다. 비슷한 사람이 하는 비슷한 질문이었지만, 두 사람이 바라보는 관점은 아예 상반되어있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상품과 작품은 만들어지는 시작점이 다르다. 작품은 자기 자신부터 시작되고, 상품은 고객 즉 시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작은 시작의 차이가 소통방식의 차이를 만들었다. 역으로 그들의 소통방식을 통해 이들이 만든 것이 작품인지 상품인지 판별할 수 있다.
이러한 상품과 작품의 관점이 직접 만드는 프로덕트의 규정. 내가 작가로서 작품을 만드는가. 아니면, 판매자로서 상품을 만드는가. 정의를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여러분도 자신이 만드는 생산품 또는 담당하는 업무를 작품으로서 보는가 아니면, 상품으로써 바라보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서 만들어가면, 더욱더 좋은 완성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