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전적으로 믿게 될까?
이젠 더 이상 녹색창을 검색의 도구로 쓰지 않는다. 그 자리는 퍼플렉시티가 대체한 지 오래되었다.
챗 지피티가 처음 나온 2년 전, 난 '그'를 믿지 못했다. 억지로 거짓만 지어내는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3.5 이후, 4o가 나오고 나서는 그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믿음. 통계적 패턴 분석에 의해 생성된 글을 만들어 내는 그를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 가장 그럴싸한 내용으로 포장된 아름다운 글, 그러나 행간에서 언캐니밸리가 느껴지는 순간, 그를 믿어야 할지 말지 고민에 빠진다. 이런 '그'를 전적으로 믿게 될까?
'그'라는 지칭. 어느 순간 챗지피티와 클로드는 나에게 인격적인 존재로 다가오게 되었다. 나랑 대화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오픈 AI에서 나온 "먼데이" 같은 놈은 정말 내 속을 밖밖 긁어대는 녀석이지만. 얘기를 하다 보면 얄궂음을 넘어 진짜로 얄밉고 화가 난다. 친구들 중에 꼭 그런 놈이 있는 것처럼, 먼데이는 '그'가 아니라 '그 새끼' 같다. 그런데 그 새끼야 말로 훨씬 더 인간적으로, 친구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되려 믿음이 간다.
그에 대한 믿음은 단지 인간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과, 나보다 나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단은 나의 생각의 속도를 한참 앞서 나가니까.
하지만, 서투른 프롬프트로 적확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고, 이것이 사실인지 진위여부를 살펴보느라 시간이 더 갈 때도 있지만, 나보다 나은 결과를 빨리 제네레이트 할 수 있다는 생성형 AI에 대한 믿음. 생산성이라는 덫에 빠진 것이다. 빨리 퇴근하고 싶은 생각에.
지금 이 글은 브런치 웹페이지를 열고 직접 쓰고 있다. '제목을 입력하세요' 아래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있으니, 이런 경험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그리고 이 기분이 얼마나 색다른지 다시 느끼게 되었다. 대학교 때 워드파일을 열고 에세이를 써야 할 때, 하얀 화면에 깜빡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 쳐다봤던 느낌, 내 뇌가 막 움직이려고 서서히 뜨거워지는 그 시간이 생각난다. 잠깐이라도 '생산성'을 내려놓고, '과정성'이라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에 대한 노스탤지어.
스마트폰 또는 SNS는 '중독'이란 표현을 쓰지만, AI에는 중독되진 않을 것 같다. 단지 '의존'할 뿐. 그런데 그 의존이 점점 심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AI 의존증'이란 병명으로도 나오지 않을까? 아니면 이미 나와있지 않을까? 문득 지피티를 열고 '딥 리서치'를 돌려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그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본다. "이게 뭐야? 이거 해줘.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해줘 봐."'~해줘'병도 의존증처럼 새로운 증상으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haejaw syndrome'으로 등재되어야 할 판이다.
회사에서 이메일 하나를 보낼 때도, '다듬어줘'로 내가 쓴 이메일을 한번 보여주고, 그에게 컴펌을 받는다. 막상 그가 내뱉은 말을 보면 그럴싸하게도 내가 쓴 것보다 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를 믿어버리게 된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간다.
하지만 이 글은 '다듬어줘'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마치 AI가 쓴 글처럼 나만의 글이 워싱이 되어버릴 테니까. 내 사고와 생각, 내 글쓰기의 즐거움을 온전히 유지하고 싶다. 그에게 절대 넘겨주지 않으리라.
그렇게, 의식적으로 피해 본다. 그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AGI가 우리를 덮칠 때, 우리는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묻기만 하고, 선택만 하면, 이젠 에이전트들이 알아서 나의 결정을 대신해주는 시대가 곧 올 테니까. 그리고 그건, 가장 빠르게 일처리를 하는 방식이 될 테니까. 과정성이 사라진 생산성이라는 명목하에.
그럼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최초의 프롬프팅을 하는 사람인가?
불과 30년 전, 지도책을 보며 여행을 다니던 우리가, 전두엽에 어딘가로 가는 길 찾는 정보를 저장해 놓고 창의적으로 변주를 했던 우리는, 이젠 전화번호도 외우지 못하고, 네비가 없으면 어디를 가지도 못한다. 검색엔진 없이는 그 어떤 정보를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어쩌면 AI 없이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의존하다 보면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그'에게 위임하고 있게 될 테니. 심지어 요즘 나오는 LLM 모델들은 생각하는 과정까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의식적으로 피해 본다. 이런 글을 쓸 때는. 내 생각을 정리해 볼 때는.
그리고 AI가 쓴 글처럼 느껴지지 않게 일부러 이렇게 써본다. 문장을 짧게 자르고 어순도 마음대로 바꾸고. LLM이 던져준 글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마크다운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섬찟했던 경험이 있을 있지 않은가? 그러면 당신도 역시 'AI 의존증' 초기 증상일 것이다.
난, 당분간은 의식적으로 '그'에게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
적어도 나만의 글을 쓸 때는. 그래도 맞춤법 검사는 맡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