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타야'를 조금 달리 보고 싶어졌다
지난 달 일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 중 하나는 나름 츠타야를 좀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행 기간 중, 온전히 3일을 머문 곳은 시부야에서 전철로 20분 정도 걸리는 유텐지였는데, 이곳은 서울로 빗대면 상수동이나 망원동처럼 번화가와 가깝지만 조금은 한갓진 분위기가 흐르는, 그야말로 '동네'였다. 출퇴근 시간이면 전철역에서 쉴새없이 사람들이 오가는, 그 시간대의 전철역에 입점한 마트에는 먹거리와 생필품을 사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그런 동네.
이 동네에서 츠타야를 발견했다. 사실 '츠타야'는 어느 동네에나 있는 렌탈샵이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 이런 동네 츠타야를 만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게 사실. 정작 나로서는 늦은 밤에 혼자 동네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관광객으로선 결코 접근할 리 없는 동선에 있던 곳이라서 역시 산책은 대단하다고 느꼈고. :)
어쩌다보니 매장에 들린 게 밤 11시 좀 넘은 시간이었는데,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로선 매장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가게에 들어가 아주 천천히 둘러봤다. 그 시간에도 손님들은 꾸준히 들어왔고, 진열된 CD, DVD, 만화책을 구경하다보니 한두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최신작들이 꽤 있었고, 판매점들과 마찬가지로 프로모션을 집중해서 하는 작품들도 있었다. 만화책, CD, DVD 별로 차트가 있었는데 그게 이 가게만의 차트인지, 다른 체인점들과 연동된 결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만화책 1위는 [아이 앰 히어로]였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나도 좋아하는 작품이라서. 애니메이션, 영화 외에도 한류 코너가 별도로 있어서 한국 드라마 DVD가 상당한 양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가게는 새벽 1시에 문을 닫았다.
그 심야 시간 동안, 15분에 한 명 정도씩 손님이 들어왔다. 퇴근길에 들린 게 분명한 정장 차림의 남자 손님도 있었고, 집에서 마실 나온 듯 츄리닝 차림의 여자 손님도 있었다.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모두 1인 손님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CD보다는 만화책이나 영화/애니메이션 DVD를 빌리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과연 이런 '동네 츠타야'가 평소에도 2명 이상, 그러니까 친구나 연인이 함께 올 만한 곳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츠타야는 애초에 골목 기반의 렌탈샵이(었)다. 이 '렌탈'이라는 개념이 잘 안 잡힐 수도 있겠다. 한국에서 유행했던 '책 대여점'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일본은 책 뿐 아니라 음반과 DVD도 렌탈하는 게 대도시에서는 일반적이(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환경적으로 일본의 유통망이 판매와 렌탈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사실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어쩌면 콘텐츠 상품에 대한 니즈와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물리적 공간의 협소함, 그리고 강력하게 작동하는 저작권 보호 장치가 시장에서 결합된 결과일지 모르겠다는 짐작이 있다.)
아무튼, 그래서 느낀 것.
츠타야는 사실은 이렇게 촘촘하게 조직화된 골목상권을 바탕으로 구축된 브랜드가 아닌가. 더 나아가서, 다이칸야마나 시부야 같은 츠타야의 플래그쉽 매장은 이 거미줄 같은 유통망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
요컨대 이런 것이다. 2000년 이후, 한국에서 온라인 상거래가 실물 제품을 넘어 무형의 콘텐츠로도 확장되며 구조적 변이가 이뤄지는 동안, 일본은 여전히 20세기 식의 렌탈/판매점이 문화 콘텐츠 유통의 주류였다. 그 핵심에 츠타야가 있는 셈인데, 일본의 음악시장만 봐도 전세계 CD 판매량을 좌지우지하는 규모란 걸 감안한다면 이것은 아주 천천히 붕괴하는 시장인 셈이다. (작년에서야 일본의 음악 시장은 처음으로 온라인 매출이 오프라인 매출을 넘어섰다. 한국 혹은 영미권에 비해 수년 늦은 결과다.) 그렇다면 츠타야의 입장에서, 오프라인 매장은 어차피 사라질 수익모델일 뿐 아니라 회사의 존폐 마저 위협할 리스크다. 그렇다면 대안은, 츠타야를 완전히 다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것. 오프라인으로 다져진 유통 구조를 온라인으로 바꿀 수는 없으니(게다가 거기는 라쿠텐 같은 쇼핑몰이 꽉 잡고 있으니) 기존의 유통망을 활용하면서 구조적으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미션이 있는 것.
다이칸야마, 시부야, 후쿠오카 츠타야는 각각 서점, 카페/다이닝, 전자제품으로 특화되어 있는데 다이칸야마를 제외한 프리미엄 매장들에도 렌탈/판매샵은 존재하는 걸로 안다. 그러니까, 츠타야를 분석한 여러 글들이 겨냥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의 츠타야는 갑자기 고급이당~!! 하고 튀어나온 게 아니라, 수십년 간 골목상권으로 다져진 만화,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음악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의 촘촘한 유통망을 기반으로 전자상거래에 익숙한 2030세대의 일상에 스며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결국 기존의 유통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브랜드 전략이라는 생각.
그 점에서 시부야의 츠타야를 살펴볼 만 했다. 시부야의 츠타야는 6층 건물로, 1+2층은 판매샵, 3+4층은 렌탈샵, 5+6층은 카페/다이닝과 프리미엄 서점이었다. 엘베를 타고 6층으로 가면 격식을 갖춘 웨이터들이 손님을 맞이하는데, 커피부터 디저트, 간단한 식사까지 책에 둘러싸여 즐길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톤 다운된 조명에 고급스러운 소파와 테이블이 그럴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진열된 책들은 주로 미술, 사진, 패션 매거진들이었던 것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6층이 잘 구성된 아트 편집샵 같은 분위기였다면, 5층은 일반 서점처럼 유행하는 자기계발서와 패션/뷰티 관련 책들과 소설/에세이 류가 주를 이뤘다.
나는 2년 전에 다이칸야마 츠타야를 둘러봤는데, 그곳과 비교해도 시부야 츠타야는 굉장히 작은 느낌이었다. 다이칸야마의 그 압도적인 '책'이 없었던 셈. 다만 목적이 달랐던 인상이다. 시부야는 장소 특성상, 데이트하는 연인들을 주요 고객으로 상정한 공간이란 인상이었다. 그래서 고급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책을 단순히 오브제로 전락시키지 않는, 아주 미묘하면서도 세심한 공간 배치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책은 라이프스타일의 중요한 어떤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6층이 이런 무드 중심의 공간이었다면, 5층은 그야말로 일반 서점의 북적거림이 있었다. 다만 재미났던 건, 4층 이하 1층까지의 렌탈샵과 판매샵이었는데 남자 아이돌 그룹의 사인회가 있었고, 유텐지의 동네 츠타야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양의 애니메이션/영화 DVD가 있었던 점이다. 이 사람들이 시부야에 사는 건 아닐텐데, 그렇다면 원하는 작품을 찾으려고 집에서 지하철을 짧게는 15분 이상 타고 여기까지 와서 대여한 다음 또 반납을 하는 것인가..?! 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여/반납의 프로세스는 이렇게 구식은 아니겠지...-_-; 그저 짐작인 것이다.
중요한 건 어쨌든 대체로 '온라인'에서 VOD를 보는 방식이 '오프라인'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게 강점이자 엄청난 취약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츠타야가 플래그쉽 스토어로 '고급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면, 이 거대 기업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몰락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츠타야의 걸음은 이제 막 시작한 셈이기도 하다. 일본의 온디멘드 VOD 시장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셈이니, 이런 관점에서 츠타야의 미래가 궁금해지기도 한 것.
한편, 이런 맥락에서 츠타야를 흔히 한국의 교보문고와 비교하는 보편적인 관점에 모종의 의심이 생겼다. 츠타야의 본질이 '책/지식'이 아닌 '유통/물류'에 있다면 한국에서 비교해야할 것은 교보문고가 아니라 신세계 혹은 이마트가 아닐까.
이마트는 최근 일렉트로마트, 스타필드, 그리고 위드미 편의점을 이마트24로 재편하면서 이마트라는 브랜드를 다층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좀 더 일상에, 좀 더 목적지향적으로, 좀 더 편리하게, 좀 더 시간을 쓰는 쪽으로 급변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신세계 백화점까지 보탠다면, 그야말로 신세계의 빅 픽쳐는 쇼핑의 일상화이고 그 기반은 당연히 유통/물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츠타야를 단지 '서점'으로만 보는 건 지나치게 협소한 관점으로 이 거대한 플랜을 보는 게 아닐까. 츠타야도 이마트도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한 거라고 보면, 이후 3년 혹은 5년 후의 근미래는 그저 충격적으로 달라질 거라는 것 정도만 짐작하게 된다. 이 거대기업들이 꿈꾸는 미래가 도대체 어떤 그림일지 (짐작은 하겠지만) 구체적으로 그리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교보문고는 본질적으로 츠타야와 비교 대상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