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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진 Mar 08. 2021

싸우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

이 어르신은 여전히 스탭을 밟는다

안도 타다오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게 아마도 2008년인가, 2009년 무렵일 것이다. 어느 패션지에 소개된 그의 작업을 보면서 일본의 한적한 골목길을 상상했던 것 같다. 화려하고 번잡한 도쿄보다는 가나자와 같은 교외의 오래된 주택과 '21세기 미술관' 같은 스토리가 있는 장소에 쉽게 반했던 시절.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돌아보면 그쯤부터 세계 각지의 이런 장소들을 동경하기 시작한 것 같다. 


유니클로가 발행하는 <라이프웨어>라는 매거진이 있다. 총 4권이 발간된 잡지로, 유니클로 브랜드에 스토리를 가미하는 컨셉이다. 요즘에 누구나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다듬어내는 게 일반적이지만, <라이프웨어>는 매호 특정 주제에 맞춰 중요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녹여낸다. 마침 유니클로에서 책을 보내줘서 재밌게 읽었다. 새삼 안도 다다오 이야기를 하게 된 것도 여기서 그의 인터뷰를 봤기 때문이다.

이번 호의 테마는 'Find Your Healthy'다. '건강함'이란 단어에서 직관적으로는 러닝하는 젊은이들이 떠오른다. 요즘 내 무릎과 허리가 안 좋아져서 특히 그럴 수 있겠다. ㅠㅠ 역시나 활동성이 강조된 상품들이 '건강한 화보'와 함께 소개된다. 그런데 안도 다다오의 인터뷰를 읽다가 문득, 이 어르신의 건강함이란 바로 정신과 생각, 무엇보다 '하고자 하는 일'에서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는 원격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몸도 마음도 자유롭지 못한 시절에 몸과 마음의 건강함을 찾는 주제가 특히 와닿는다. 안도 다다오 외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도 실렸다.


안도 다다오의 인터뷰 제목은 Build the Future: 미래를 짓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일생을 바쳐 만드는 ‘영원한 건물’이다. 영원한 건물이라니, 도대체 이 어르신은 무슨 꿍꿍이인가 하면서 펼쳤다.  


이 어르신의 나이가 80세다. 80이라니, 나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건축가. 십여 년 전에 암 수술을 받았고 그 결과 십이지장, 담낭, 췌장 등의 장기를 떼어내야 했다. 그럼에도 활력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어째서인지 그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가 뭘까. 현재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환경과 교육인 것 같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건축물은 어린이 도서관이다. 오사카에서 '나카노시마 어린이 책의 숲'이라는 이름의 도서관을 짓고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작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이 정도만 보면 오, 역시 대가답게 안정적이고 의미있는 노년을 보내고 있군... 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 도서관은 정부 후원으로 건립된 곳이 아니다. 정부는 건축 허가만 내줬고 건축비용은 안도 다다오 본인의 사재를 털었다. 운영비 역시 지원받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역 기업들을 직접 돌며 후원금을 모았다. 어린이 도서관은 사실 세금이 아니면 운영되기 어려운 공간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마찬가지다. 어린이 도서관이 영리화되면 어린이들을 위한 장소라는 취지가 퇴색된다. 모든 어린이들, 가난하든 돈이 많든, 여유가 있든 아니든 그 모든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에 조금 다른 의미가 얹힌다.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이기도 하다. 


안도 다다오는 이 도서관의 건립과 운영에 80대를 보낼 참이다. 어쩌면 그의 삶을 거는 것일 수 있다. 그 점에서 '싸운다'라는 표현이 꽤 적절하다. 실제 이력을 통틀어 그는 편견과 싸웠고 고정관념과 싸웠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20대의 나이에 건축가가 되었다는 이력은 그의 정체성을 완전히 다른 곳에 놓아둔다. 그에게서는 스텝을 밟으며 뛰는 운동선수 같은 이미지가 풍긴다. 


80세의 나이에도 광범위한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세상과 싸우는 일. 과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생전 그의 마지막 목표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는 건물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건물도 세월의 풍파에 영원할 수는 없지만, 건물이 남긴 감정은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고 말한다. 요즘 특히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내가 하는 일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어떤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가... 이런 질문을 자주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인터뷰, 도서관에 대한 애정과 열정, 그 모든 걸 가능케 하는 동기가 새삼스럽게 들렸다.


"우리 삶에서 자유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자유를 지키고 싶다면 싸워야 합니다."


그가 말하는 '자유'란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 자유는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이건 누구나 알고 있고 역사가 증명한 일이지만, 우리는 늘 정작 현실 앞에서 자유를 말하기에 망설인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 피곤한 채로 순응하며 살 수 있다고 합리화하게 되는 거다. 그런데 안도 다다오는 80세의 나이에 '싸우라'고 말한다. 자유를 위해, 그러니까 돈도 안되고 심지어 돈이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잡아먹는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고 제대로 운영하겠다는 그 마음을 위해 싸우는 건축가가 된다. 

인터뷰에서 마지막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문제가 생기죠. 각오를 다지고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


맙소사, 80세에도 버텨야 한다는 얘기를 하다니. 하지만 응, 안다. 뭔가를 이루고 얻으려면 버텨야 한다는 것을. 그 시간을 줄이거나 뛰어 넘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마치 은퇴 직전의 복서가 9라운드에 카운터 펀치를 날린 뒤에 하는 인터뷰 같다. 혹은 판정패를 당한 뒤에 남기는 말처럼 들린다. 이런 사람에게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할까? 진짜 중요한 것은 '계속' 싸우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Hello, Haruki : 안녕하세요. ‘무라카미 라디오’의 DJ 하루키입니다.


하루키 인터뷰도 봤다. 2018년부터 ‘무라카미 라디오(Murakami RADIO)’를 방송하고 있는 이 작가를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입고, 듣고, 먹고, 쓰는 것에 대한 26가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은 인터뷰인데 내용보다 나는 사진에 좀 더 관심이 갔다. 늙었네 아저씨. 그리고 근사하네 아저씨. (하루키는 49년 생으로, 72세다)

음악 방송을 '에듀케이션'이라고 말하는 아저씨. 거참, 아마 나라면 분명 다른 말을 했을텐데 뭐랄까, 이런 구시대적이랄까, 일종의 사명 같은 것이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나의 고민은 안도 다다오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그렇게 '계속' 싸우고 생각하고 자기 역할을 찾거나 지키면서 늙어갈 수 있을까, 라는 것인지도. 


<라이프웨어>는 2월 26일부터 전국 유니클로 매장에서 찾을 수 있다. 무료니까 그냥 들고 오면 된다.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다. 인터뷰 동영상도 있다. 

http://www.uniqlo.com/kr/ko/lifewear-magazine/


*해당 업체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 받았습니다*


#유니클로 #라이프웨어매거진 #라이프웨어 #LifeWear #FindYourHeal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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