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 - 공중부양(2022)
※ [차우진의 워드비트]는 노랫말에 대해 이것저것을 쓰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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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의 새 앨범 <공중부양>은 2018년, 장기하와 얼굴들 해체 이후 첫 솔로 앨범이다. <싸구려 커피>(2008)로부터는 14년 만.
새삼스럽게도, 장기하는 매우 일관적인 음악가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가요, 팝(pop)을 지향한다. 곡의 작법과 앨범 구성, 그리고 개별 트랙을 연결하는 메시지가 다 그랬다. 그가 만든 곡은 죄다 남들보다 자기가 더 중요한 사람에 대한 얘기면서, 그 와중에 뾰조롬히 솟은 불안과 의심, 혹은 자기 성찰에 대한 것이었다. 까끌하고 찌릿한 감각을 외면하지 않는 게 인상적이다. 2020년에 발표한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도 그렇다. 밖을 보고 앞을 향하면서도 자꾸만 안과 뒤를 들여다보자고 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이쪽("부럽지가 않어")과 저쪽("뭘 잘못한 걸까요")을 동시에 다루는데 능숙하지만, 가사의 뒷맛은 달콤쌉싸름하다기보다는 찝찝하다. 뭐라 콕 집어 말하기 애매한, 어딘지 거시기한 내러티브다.
좋았던 일, 기뻤던 일도 돌아보면 왠지 나만의 생각일지 모른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닐까, 내가 뭔가 놓친 게 아닐까, 나만 좋았던 걸까, 이제까지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나만의 착각이었으면 어쩌지, 아니 그래도 우리 좋았잖아, 모두 즐거웠잖아... 어쩌다 깨어있는 새벽에, 잠시라도 이런 생각을 해 본 (나 같은) 사람에게, 이 노래는 남다를 것이다.
만약 내가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달랐다면
뭐라도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
언제쯤 그만둘 수 있을까요
- "뭘 잘못한 걸까요" 가사
그런데 잠깐. 이토록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이란 사실 자기애의 다른 면이다. 내가 너무 소중해서 나를 너무 괴롭힌다. 이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만 이 기이하게 뒤틀린 이기심을 어쩌지 못해 또 복잡해지고 만다. 그러다 마침내 받아들인다. 체념한다. 끌어안는다. 그냥 그런갑다, 하게 된다. <공중부양>에서는 "뭘 잘못한 걸까요"(첫 곡)와 "다"(끝 곡)가 호응하면서 이런 감각이 슬쩍 재현된다. 그러니까 삶의 어떤 시간이나 사건들은 뭐 어쩔 수가 없다.
계절이 바뀌어도
바람이 불어가도
나뭇잎이 떨어져도
사람이 머무르다가 떠나가려 할 때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냥 나만 하루 종일 나만
나의 마음만 바라보다 나는
나의 곁에 있던 마음들을 죄다
다
떠나 보냈다 생각하며 잠이 드네
- "다" 가사
이 감각을 뭐라 부를 것인가. 뜨거운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니다. 알고보니 여기엔 다소 시들해졌고, 저기엔 또 그때마냥 치열하지만 대체로 무감한 것에 가깝다. 나이를 먹고 많은 일을 겪었고, 만나고 헤어지고 부딪치고 사랑하고 애절했던 시간 끝에 나도 모르게 삶의 어떤 부분(들)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걸 알아차린다.
예전엔 삶의 모순이 어떤 시기, 그러니까 20대 후반이나 30대 중반 같은 때에 갑자기 투두둑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번 뿐인 삶 전반에는 말도 안되는 것들이 늘상 함께 한다. 어딘가에서 뭔가가 잘못된 게 아니라, 애초에 엉망진창 모순인 채로 태어나 그럭저럭 살아온 것 뿐이다.
이걸 받아들인다는 건 뭐랄까, 상심도 아니고 체념도 아니다. 그저 가만히 쓰다듬는 일이다. 삶을 통틀어 요만큼이라도 우리 자신에게 가까워지려고 애쓸 수밖에 없는 것. 그 점을 담담히 수긍하는 일. 장기하는 꽤 일관되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음악가다.
"뭘 잘못한 걸까요"로 시작한 이 앨범은 "다"로 끝난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마음이 있었다. 그 모든 게 지나간다. 그러면서 마침내 우리는 삶의 어떤 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걸 태연히 바라볼 수 있을 지 모른다. 모자라고 잘못되고 앞뒤가 안 맞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온전히 끌어안고, 꼬옥 끌어안고 잠이 든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날이 밝고, 내일이 오고,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기로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