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세라핌의 신곡+앨범이 공개되었다. 얼마 전 하이브에서 이들의 신곡을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는 못 봤지만, 대신 퍼포먼스 영상으로 멤버들을 봤다. 제작진(음악/퍼포먼스)의 상세 설명과 Q&A도 있었다.
그때는 아직 공개도 안된 음악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아무 말 안했다. 하지만 메모는 좀 적었다. 다음은 그때 적은 메모를 바탕으로 추가적으로 정리한 이야기들. 물론 이제는 검색하면 대체로 나오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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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은 허스키 폭스에서 맡았다. 하이브와는 방탄소년단의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BTS 리브랜딩, 투바투 "꿈의 장" 시리즈의 브랜딩 담당이었음.
컨셉은 '영 페미니스트'...?
왜냐면....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의 구절 "Beware, for I am fearless and therefore powerful."에서 인용한 'I am fearless'를 재조합해서 나온 게 Le Sserafim이다.
세라핌은 천사 7계급 중 최상위 계급. 신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알려졌는데, 해석에 따라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다. 일반적으로 '창조'를 상징한다.
[프랑켄슈타인]의 "Beware, for I am fearless and therefore powerful."이란 문장은 20장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20장은 인조인간 괴물과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권력구조가 마침내 뒤바뀌는 드라마틱한 장이다.
원인은 괴물이 자신의 진정한 짝을 만들어달라고 간청한 요청을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배반했기 때문이다. (겁에 질려 만들어준다고 했다가 정신을 차린 뒤 저런 괴물을 하나 더 만드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을 바꿔버림...)
괴물 입장에선 프랑켄슈타인 박사도 약혼을 했는데, 자신은 왜 혼자여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창조주에게 간청한 마음을 배반당한 이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찾아와 '너는 이제 창조주가 아니라 나의 노예다!"라고까지 하면서 분노와 무력감으로 이를 갈면서 협박한다. 하지만 박사는 뜻을 굽히지 않고, 괴물은 그때 다음과 같은 명대사를 날린다.
"Shall each man," cried he, "find a wife for his bosom, and each beast have his mate, and I be alone? I had feelings of affection, and they were requited by detestation and scorn. Man! You may hate, but beware! Your hours will pass in dread and misery, and soon the bolt will fall which must ravish from you your happiness forever. Are you to be happy while I grovel in the intensity of my wretchedness? You can blast my other passions, but revenge remains--revenge, henceforth dearer than light or food! I may die, but first you, my tyrant and tormentor, shall curse the sun that gazes on your misery. Beware, for I am fearless and therefore powerful. I will watch with the wiliness of a snake, that I may sting with its venom. Man, you shall repent of the injuries you inflict."
바로 이 대목 덕분에 [프랑켄슈타인]은 전복적인 문학 작품이 된다. 괴물이 자신의 힘을 정확히 인식한다는 점은 곧 괴물로 상징되는 소수자/여성의 각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구절은 페미니스트의 상징적인 인용구이자, 여러 여성 아티스트나 기업가들이 인용하기를 즐기는 문장이기도 하다.
이 구절이 재구성되어 'LE SSERAFIM'으로 변환된 것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신과 가장 가까운 대천사, 생명과 사랑과 창조의 존재, 순수한 빛과 사고의 존재, 6개의 날개와 4개의 머리로 인간 앞에 나타나는 최고 천사, 인간에게는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 그러나 세라핌은 또한 절대적으로 신을 주인으로 섬기는 존재이기도 하다.
르 세라핌은 아마도 이 두 개념의 전복이나 재해석을 지향하면서 세계관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아닐 수도 있고)
아무튼, 컨셉은 '영 페미니스트'같다고 해도 좋을 텐데. 여기서 바로 뭔가 어색함이 생기는 것 같다.
가사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여기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썅년이든 미친년이든 새로워야 한다는 게 케이 팝'다운' 포인트랄까.
"관심 없어 과거에 모두가 알고 있는
그 트러블에, huh
I'm fearless, a new bitch, new crazy
올라가 next one"
"욕심을 숨기라는 네 말들은 이상해
겸손한 연기 같은 건 더 이상 안 해
가져와 forever win 내게, ayy
가슴팍에 숫자 1 내게, ayy
내 밑으로 조아린 세계, ayy
Take the world, break it down
Break you down,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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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수록곡 중에선 "The Great Mermaid"도 인상적이다. 인간이 되는 조건으로 목소리를 잃을 바엔 물바다로 만들어버리겠어... 라는 무시무시한 내러티브.
"목소릴 버리라니 Crazy
사라질 수 있다니 왜 이래
말이 말 같지가 않아 Liar
마녀가 마녀 하면 듣지마
차라리 내게 내놔 Ocean
세상을 내 바다로 덮쳐
제동 없이 커져가는 꿈
포기만 안 하면 결국엔 Truth
I'm living my life 원하는 건 다 가질 거야
그래도 날 물거품으로 만들진 못해"
나중에 여기에 대해 한 번 써봐도 재밌겠고. 하지만 컨셉이든 세계관이든 과하고 묵직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힘이 너무 빡 들어갔다는 인상이었고, 그래서 컨셉은 매우 쎈데도 불구하고 비주얼과 사운드의 결과물은 적당한 인상에 머무른다. 모험을 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한데 그래서 뜻밖에도 '브랜딩을 위한 브랜딩'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음악이든 비주얼이든 오케이, 감각적이고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고급져서 퀄리티는 높이 올라가지만 재미는 떨어진다. 이화여대에서 열린 디올의 쇼 같기도 하다. 오케이, 감각적이고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고급져서 퀄리티는 높이 올라가지만 재미는 떨어진다.
근데 뭐 이런 브랜드만 그런 게 아니고, 그냥 21세기가 그런 시대인 것 같다. 상품화 얘기가 아니다. 뭐랄까, 이건 더 미묘하게 구조적이고 정치적이면서 또한 설득력이 있다. 나쁜 게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고 좋지도 않다는 게 나의 감상이자 한계일지도 모르겠고. 평론가로서 나는 바로 이 점, 나의 감각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음악이나 뮤비에 별점 따위를 매기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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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말거나, 뮤비에서는 김채원이 똑띠 나와서 좋다. 허윤진이 활짝 웃고 있는 것도 뭔가 상징적이랄까. ㅇㅇ 자네는 드디어 이 자리에 섰구나. 활짝 웃으니 나도 좋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쨌든 세계 최고에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