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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책방’이 던지는 질문들

보그코리아 | 2016.10

by 차우진


오랫동안 책은 서점에서 샀다, 물론 ‘반드시’는 아니고 ‘되도록’에 가깝지만. 특별한 신념 때문은 아니고 내게는 그게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방식이다. ‘길을 걷다가 서점에 들린다->서고를 배회한다->문득 어떤 책이 떠오른다->그 책을 찾는다->다른 책을 발견한다’ 이런 방식으로 여러 분야의 책을 구하고 읽었다. 시간 활용이나 집어 든 책의 가치에 있어서 효율이 낮기는 하다. 나는 이것을 ‘우연의 경제학’이라고 부른다. 반면 온라인 서점은 검색과 추천이 작동하는 장소다. 검색은 사용자 입장에서, 추천은 제공자 입장에서 목적이 분명하고 검증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효율이 높다. 온라인 서점의 압도적인 성공은, 물론 비용 절감이 가장 핵심적이겠지만, 이 효율성에 있을 것이다. 이것을 ‘목적의 경제학’이라고 하자.


제도적인 이슈와 물리적 공간이 결합된 체험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다른 흐름이 시작된 것 같다. 독립출판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서점의 등장부터 특정 분야의 도서만 다루거나, 책과 맥주를 함께 할 수 있는 서점들이 등장했다. 게다가 온라인 서점들은 오프라인에 중고 서점을 열고 문화 공간처럼 운영하기도 한다. 동교동의 [유어마인드], 망원동의 [북바이북], 서교동의 [땡스북스], 해방촌의 [고요서사]를 비롯해 음악 전문서점인 [라이너노트], 고양이 전문서점 [슈뢰딩거], 추리소설 전문서점 [미스터리 유니온], 시집만 다루는 [위트 앤 시니컬] 같은 곳들이 각자의 동네에서 문을 열고 영업 중이다. 알라딘과 예스24의 중고서점도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데, 중간 이상 규모의 서점들이 등장한다는 소식도 속속 들린다. 전 제일기획 부사장인 최인아 씨가 대표를 맡은 [최인아 책방]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선릉에 문을 열었고, [북바인더스]는 가로수길에 있는 카페 피카에 새로운 책방을 열었다. 홍대 앞의 문화공간인 [aA뮤지엄]은 책방을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 샵으로 리모델링한다. 심지어 동서식품도 책방을 연다는 소문이 있고 홍대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와우교 아래에 있는, 10년 전에 철거된 철길은 ‘걷고 싶은 거리 사업’의 연장으로 서점 거리가 될 예정이다.


한 때 고사하다시피 한 ‘책방’이 어째서 지금 다시 유행하는 것처럼 보일까. 여기에는 ‘도서정가제’ 같은 제도적인 문제와 ‘물리적 공간’이라는 공감각적 체험이 맞물려 있다고 본다. 최근에는 서울시가 서점 활성화에 대한 조례를 제정하면서 서점은 도시 개발의 측면에서도 다른 영감을 제공하는 것 같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데, 나도 거기에 한 마디 보태자면 이런 현상은 ‘네트워크’ 시대의 본질에 가까운 흐름인 것 같다. 알다시피 현재는 모바일 시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스마트폰이 가장 압도적인 미디어로 자리 잡았다. 기존 미디어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규모를 키우는 쪽으로 성장했다면 지금은 무수한 개인이 하나의 미디어로 기능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 맥락에서 플랫폼과 콘텐츠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웹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네트워크에서는 플랫폼이 콘텐츠와 사용자를 연결해줬다. 책에 한정하자면, 네트워크 혁명 이전에는 동네 서점이란 플랫폼에서 독자가 책이라는 콘텐츠와 연결되었고, 그 이후에는 온라인 서점이란 플랫폼에서 사용자가 지식과 교양이라는 콘텐츠와 연결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모바일 혁명 이후에 다시 오프라인 플랫폼이 등장하는 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연의 경제’와 ‘목적의 경제’가 교차하는 지점


네트워크의 본질은 단순히 여기서 저기를 연결하는 게 아닌 ‘가치’를 발견하는 데에 있다. 요컨대 플랫폼은 가치가 연결되는 장소인 셈이다. 여기서 사용자는 수동적인 위치가 아니라 능동적인, 보다 적극적인 위치에 놓인다. 천천히 움직이면서 서고를 뒤적이고, 네모난 검색 창에 검색어를 치는 모든 행위가 그렇다. 우연이든 목적성이 분명하든 이때는 ‘내’가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그 점에서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몸’이 중요하다. 내게 네트워크는 ‘연결된다’는 형용사가 아니라 ‘움직인다’는 동사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네트워크 세계에서 우리는 어디로 움직일 것인가. 바로 이 질문이 지금 크고 작은 서점의 출현을 보는 관점이라 본다. ‘우연의 경제’와 ‘목적의 경제’가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동네 서점인 것이다.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최근 등장하는 서점이 ‘동네’에 자리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 ‘사람’이 머물고 대화한다는 점이다. 많은 서점 주인들이 말하는 바, ‘동네’ 서점은 단순히 부동산 문제 때문 만은 아니다. 자신이 살았던 장소이거나, 타깃과 부합하는 장소거나, 사회적으로 책과 어울리는 장소로 의미화된 곳들이다. 서점들은 그 나름의 분명한 목적에 의해 바로 거기에 자리 잡는다. 이유가 있어서 홍대에, 북촌에, 해방촌에, 선릉에 문을 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와 책장의 높이, 테이블과 좌석의 크기, 콘센트까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고려된다. 본능적으로든 계획적으로든 그렇다. 책과 함께 커피를 판매하는 [최인아 책방]은 테이블의 높이가 낮고 벽에 콘센트가 없다. “여기 오는 사람들이 노트북 대신 책에 집중할 수 있게 일부러 콘센트를 없앴어요. 와이파이도 없애려고 했는데 그건 다들 말리더라고요.” 최인아 대표는 서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여러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바일 네트워크가 탐구하는 본질적인 것


그래서,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네트워크의 본질이 가치에 있다면, 그 가치란 눈에 보이는 콘텐츠 너머에 있는 무언가일 것이다. 콘텐츠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바로 사람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고, 그 맥락에는 그 사람의 경험과 경력과 세계관과 영감과 노하우가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 큐레이션이 주목받은 것도 결국 사람 때문이다. 네트워크에 기반한 경험은 어떤 매력적인 사람에게 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의 매력이란 타고난 감수성과 살아온 시간이 결합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상의 ‘연결’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맞닿는 지점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하필 동시대적으로 한꺼번에 벌어지는 건 어떻게 봐야할까. 나는 그게 세대의 문제와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서점의 주인들은 30대 중반부터 50대에 걸쳐 있다. 199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다. 이들은 70년대 둘이나 셋의 자녀 가정에서 태어나 8~90년대의 경제성장기에 10대와 20대를 보냈다.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했고, 그로부터 기존과 다른 가치관을 훈련한 세대다.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를 습득하고 소비하면서 부모와 다른 삶을 꿈꾸던 사람들인 그들은, 하지만 9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장기적인 경제불황과 글로벌 자본주의 안에서 정신없는 청년기를 보냈다. 그러다 문득 중장년층이 되어 자기 삶을 돌아보니 뭔가 아니다 싶은 것, 그게 바로 지금이 아닐까. 여기에 대해 최인아 대표는 ‘내가 광고계에 오래 있었지만, 스스로는 광고가 아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광고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고, 솔루션은 결국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을 ‘생각’을 했는데 이 서점으로 후배 직장인들에게 그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여기는 결국 생각하는 장소인 셈이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최인아 책방]은 최인아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공간이고, 그것은 다른 서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고보면, 모바일 네트워크라는 환경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들을 좀 더 본질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차우진: 음악평론과 대중문화에 대한 칼럼을 쓴다. 모바일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 지구멸망과 부동산, 그리고 세대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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