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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진 Aug 18. 2017

2010년의 한국 아이돌 산업

21세기 한국 아이돌 산업 | 대중음악 SOUND 창간호(2010.10)

2010년 10월에 발표된 글. 지금과는 상당히 달라지긴 했지만, 초기 한국 아이돌 산업을 정리하는데엔 약간의 도움이 될 듯. 예전에 쓴 글들을 다시 옮기는 중이다.

2010년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아이돌 음악의 지형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여 년간 홍대 앞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인디 씬의 비약적인 시장 확대와 함께 아이돌 그룹의 음악적 변화 및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형태나 시장지배력에 생긴 변화는 전반적으로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과 환경의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이 변화의 스펙트럼은 21세기 이후 보다 일상화된, 따라서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지상파 TV와 케이블 채널의 확장, 90년대의 연장선에서 고려되어야 할 아이돌 그룹에 대한 대중의 인식변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된 팬덤의 질적 변화에까지 이른다.


요컨대 199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한국의 연예기획사 시스템은 10여 년의 시간동안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질적 전화를 이뤘고 그 과정에서 아이돌 음악 자체에 대한 변화와 해외 시장 진출, 그리고 아이돌 팬덤의 분화가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이런 변화가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은 2007년 소녀시대의 “Gee”가 발표된 이후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연예 기획사 내외부의 주목할 만한 변화가 걸 그룹 열풍으로부터 촉발되었다고 할 때, 이 흐름의 시발점은 원더걸스의 “Tell Me”였으나 그걸 주도한 건 소녀시대의 “Gee”라고 할 수 있다. 소녀시대의 대중적 성공과 비평적 대상화는 몇 가지 주요한 특징을 가지는데, 그것이 한국 연예 기획사의 질적 변화 및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의 변화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SM엔터테인먼트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분화


소녀시대가 소속되어 있는 SM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다각도의 평가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사실 이 기업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1990년대(와 2000년 초반까지)의 평가는 평가라고하기가 무색한 수준의 것, ‘가요계의 생태계를 아이돌 중심으로 망친 주범’이란 평가였다. 이런 평가는 대략 두 가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하나는 1990년대 유행한 대중문화(음악) 비평이 대중음악과 정치를 지나치게 밀접한(절대적인) 것으로 여긴 196, 70년대 서양의 록 이데올로기를 근거로 삼았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부흥기였던 1990년대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수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실제 대중들은 아이돌과 기획사 음악을 대규모로 소비하고 있음에도 비평적 대상보다는 계몽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90년대 중반 홍대 앞에서 튀어나온 인디 씬의 가치평가가 필요 이상으로 확대 해석되었다. 물론 당시 연예 기획사의 결과물이 음악적 고민의 결과라기보다는 시장에 대한 고민에서 등장한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그 질적 변화가 ‘지독하게 자본주의적인’ 엔터테인먼트 시장과 산업의 변화로만 폄훼되며 비평적 대상에서 고스란히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사유와 반성, 그리고 성과는 2007년 이후에나 가능했는데, 그것은 이 글의 존재가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으로 SM엔터테인먼트는 새삼 중요한 대상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일종의 선구자적 역할을 해온 이 기업은 2000년을 기점으로 질적 변화를 추구하는데, 그 요인은 명백히 당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기반의 변화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된 건 1998년 두루넷이 상용화되면서부터였다. 2000년 1월에는 다날이 휴대폰 벨소리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했고, 7월에는 휴대폰 결제서비스를 오픈했다. 소리바다 p2p 서비스는 같은 해 5월에 시작되었는데 저작권 분쟁으로 소리바다가 서비스를 중단한 2002년 7월까지 한국에서는 음악시장의 본질적인 변화가 예고되던 시기였다. 공교롭게도 소리바다가 서비스를 중단한 2002년 7월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배경음악 유료서비스가 오픈한 시기였다. 미니홈피로 대변되는 온라인 정체성을 드러내고 확립하는데 음악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 환경은 음악시장과 대중에게 생산과 소비방식의 본질적인 변화를 야기했다. 이런 변화는 필연적으로 온라인 망 서비스 사업자와 컨텐츠 사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는데 그 결과는 1차적으로 2003년 중소 규모의 9개사 온라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유료화되는 걸로 드러났고, 2004년에는 네이버의 뮤직 스트리밍 서비스(8월), SKT의 멜론닷컴(10월)과 KTF의 도시락(11월)의 오픈으로 드러났다. 한국의 디지털 음원 시장은 2005년 벅스와 소리바다가 합법화와 함께 전면 유료화되며 정점에 달했고 2009년 8월 네이버의 MP3다운로드 서비스가 오픈하며 현재의 생태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 SM엔터테인먼트는 이런 변화에 가장 빨리, 체계적으로 적응한 기업이다. 2000년에 데뷔한 보아는 곧바로 일본으로 진출했는데 그때 SM엔터테인먼트는 코스닥에 상장하고 일본의 에이벡스(AVEX)와 음반 라이센싱 및 아시아 에이전시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자사의 온라인 컨텐츠와 음원을 관리할 계열사인 (주)판당고를 설립한 것도 같은 해였다. 초고속 인터넷과 벨소리 다운로드가 1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던 2000년부터 SM엔터테인먼트는 이미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동방신기는 2004년에 싱글로 데뷔할 수 있었고,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세븐이 같은 해에 최초의 디지털 싱글 <Crazy>를 발표, 온라인 음원차트를 석권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단지 오프라인 음반 차트가 온라인으로 옮겨간 게 아니라 음악 산업에 있어서 본질적인 변화: 개별 음원에 대한 대량 소비를 통한 새로운 시장과 수익을 창출하고, 그에 맞춰 새로운 방식의 마케팅과 프로모션, 나아가 엔터테인먼트 기획 시스템의 총체적인 변화를 야기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대중음악 시장을 보는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요컨대 산업과 시장의 관점에서 기업의 변화와 적응이라는 생태적 관점이야말로 현재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변화와 아이돌 음악의 유행을 들여다보는 렌즈여야 한다.


2. 디지털 시장의 형성과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 아이돌 그룹의 활동방식 변화


2000년 이후 한국 아이돌 산업의 두드러진 변화는 90년대에 등장한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주창한 ‘토털 매니지먼트’ 전략을 마침내 정립했다는 사실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OSMU) 전략을 통해 제작과 매니지먼트는 물론 스타를 개발하고 훈련시키는 모든 기능을 통합했는데 공간적으로는 강남이나 홍대 인근 빌딩에 사무실과 스튜디오, 연습실과 회의실을 구비하고, 음악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비롯해 작/편곡과 레코딩 엔지니어링, 안무와 코디네이터까지 동일한 관리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기업형 조직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특히 ‘아카데미’ 혹은 ‘연습생 시스템’으로 불리는 독자적인 교육/훈련 시스템을 확립했다.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을 가진 ‘연습생’은 말 그대로 데뷔 전 기획사에서 트레이닝과 테스트를 반복하는 연습 기간을 가지는데, 연습생으로 발탁되는 연령대는 10대 중반에서 초반으로 점점 어려졌으며 연습생 기간이 꽤 오랫동안 유지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또한 연습생을 선발하는 오디션은 각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정기·비정기로 시행하는 것 외에도 방송사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방식도 개발되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2001년 6월 ‘박진영의 영재육성 프로젝트 99%의 도전’이란 공개 오디션을 SBS <초특급 일요일 만세>와 진행했고, 2006년에는 ‘슈퍼스타 서바이벌’(3월 18일~5월 20일)을 역시 SBS와 공동으로 기획,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JYP는 원더걸스의 선예, 2AM의 조권 등을 선발했고, 2PM의 멤버들(이준호, 황찬성, 옥택연)과 2010년에 다른 소속사에서 시크릿이란 걸 그룹으로 데뷔한 한선화 등을 발탁했다. 그런데 이런 공개 오디션은 2001년과 2006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에서 차이를 가진다. 전자가 9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기업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실험적 시스템의 확립(유년기부터 철저한 훈육 과정을 통해 엔터테이너로 길러지는 시스템의 정착)을 상징한다면, 후자는 이미 해외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경험을 기반으로 차세대 아시아 스타, 즉 ‘제2의 비’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된 공개 오디션이었다. 따라서 2010년 현재 동아시아 지역 전반에 걸쳐 시장성을 확보하고 있는 다수의 아이돌 그룹들은 이때부터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구성하고 실험하며 구체화시켜온 아이돌 시스템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2000년 이후에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공중파, 케이블 방송사의 관계가 보다 밀접하게 가까워졌다는 혐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god의 육아일기’가 부분적으로 제시한 가능성: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곳에 출연한 아이돌 가수가 큰 상업적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쇼가 리얼리티 형식으로 전환되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무모한 도전>(이후 <무한도전>으로 바뀜)이 시작된 2004년부터 종합 엔터테인먼트 전문 케이블 채널 tvN과 인터넷 방송 플랫폼 곰TV가 개국한 2006년에 걸쳐 다각도로 실험되었다. YG엔터테인먼트가 2006년 제작하고 인터넷 방송 곰TV를 통해 방영한 <리얼 다큐 빅뱅>은 이후 tvN을 통해 재방영되었다. <리얼 다큐 빅뱅>은 인터넷 공개 2주 만에 100만 건의 조회를 기록했고 2007년에는 MTV 채널을 통해 아시아 15개국에 방영되었다. 이후 빅뱅이 한국과 동남아시아에서 가시적인 성공을 거둔 2009년에는 <빅뱅: 더 비기닝>이란 제목으로 편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한편 JYP엔터테인먼트는 엠넷과 함께 13명의 연습생 중 공식적인 남자 아이돌 그룹을 뽑는 리얼리티 쇼 <열혈남아>를 2008년에 제작, 방영했다. 2PM과 2AM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되었다. 이후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이 대중화된 2009년에는 2NE1의 데뷔와 함께 방송(엠넷)과 인터넷(미투데이)을 활용한 프로모션 프로그램 <2NE1 TV>가 높은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소녀시대는 KBS Joy에서 <소녀시대의 Hello Baby>를, 카라는 엠넷에서 <카라 베이커리>에 출연했고, 티아라는 아예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를 통해 데뷔했다. 또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코너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가상부부를 연기하는 2AM의 조권과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은 2009년 말과 2010년 중순에 디지털 싱글 “우리 사랑하게 됐어요”와 “고백하던 날”을 발표하기도 했다.


청년 커뮤니티의 핵심 미디어로 자리 잡은 인터넷과 모바일의 편의성을 흡수한 2000년대의 TV는 10대와 20대, 30대에 이르는 세대를 통틀어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배경을 기반으로 최근 등장한 아이돌 그룹은 ‘데뷔 전후 예능 프로그램 출연→음반·예능 활동 병행→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CF 출연→드라마·뮤지컬·영화 등으로 진출’의 패턴으로 활동했고 이로 인해 그룹의 형태도 변화했다. 소위 ‘유닛’이라 불리는 소그룹이 음악 장르나 활동 공간에 따라 가변적으로 구성되었는데 본체가 되는 그룹은 유지되었다(슈퍼주니어가 대표적이다). 소녀시대 역시 이런 유닛 활동에 적극적인 그룹으로 메인 보컬을 중심으로 유닛을 구성해 드라마 사운드트랙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닛 활동 외에도 씨야와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경우처럼 다른 그룹의 멤버들이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는 경우도 일반화되었는데 이런 형태의 활동은 주로 드라마 사운드트랙을 통해 전개되었다.


한편,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재편된 가요 시장에서 아이돌 그룹은 이전까지와는 다른 활동 방식을 요구받았다. 90년대의 아이돌 그룹이 정규 앨범 발표를 기준으로 ‘데뷔 앨범→활동→휴식기→두 번째 앨범발매’로 활동한 것과는 달리 2000년대의 아이돌 그룹은 주로 디지털 싱글을 중심으로 ‘데뷔 싱글/EP→활동→두 번째 싱글/EP→활동→세 번째 싱글/EP→활동→정규앨범 발매→리패키지 앨범 발매’의 순서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90년대에 존재했던 휴지기가 사라지며 2000년대의 아이돌 그룹은 1~2개월 간격으로 싱글을 발표하고 지상파와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런 변화가 한국 방송환경과 음악 산업의 변화에 따른 결과라는 점이다. 요컨대 아이돌 그룹의 활동 방식 변화는 21세기적인 징후인 셈이다. 여러 번에 걸쳐 발매되는 싱글과 EP, 그리고 ‘오리지널’ 정규앨범과 ‘리패키지’ 정규앨범을 순차적으로 발표하는 방식은 음원 시장에서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자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상정한 두 개의 시장(일반인들과 팬덤)을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과도 상응한다.


3. 2000년 이후 아이돌 그룹의 음악적 변화


2000년 이후에 등장한 아이돌 그룹의 특징 중 하나는 음악적 변화다. SM엔터테인먼트는 H.O.T.와 보아를 통해 기반을 다진 유영진과 켄지를 필두로 김영후와 황성제, 박창현 등의 작곡자를 보유,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f(x)와 샤이니의 노래를 만들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가수였던 원타임과 스토니스컹크의 멤버였던 테디와 쿠시가 작곡을 거의 전담하고 있으며 빅뱅의 노래를 통해 대중성을 확보한 용감한 형제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걸 그룹을 통해 신진 작곡그룹들의 등장도 중요하게 다룰 수 있다. 소녀시대의 “Gee”로 관심을 얻은 이트라이브와 포미닛의 “Hot Issue”를 만든 신사동호랭이가 대표적이고 며 티아라의 “거짓말”을 작곡한 조영수와 카라의 대표곡들을 만든 한재호, 김승수도 크게 주목받은 작곡가들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글로벌 팝의 트렌드를 직접 도입하거나 변형시키면서 음악적 성취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이것은 걸 그룹에 의해 2000년대의 아이돌 팝이 확장된 결과로서 음악적 성취와 장르적 분화가 종합적으로 재구성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미지 전략과 포지셔닝에 있어서 SM엔터테인먼트는 여전히 고도로 훈련된 모범생 같은 아이돌 그룹을 선보이고, YG엔터테인먼트는 힙합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로운 스타일의 아이돌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DSP는 카라를 통해 핑클의 ‘옆집 소녀’같은 이미지를 재현하는데 흥미로운 건 JYP엔터테인먼트와 네가 네트워크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원더걸스는 데뷔 이후 국내에 걸 그룹 붐을 주도했고 네가 네트워크의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한국에서 정통 흑인음악(소울과 알앤비)을 표방했던 브라운 아이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데뷔한 뒤 음악적인 호평 속에 안정적인 포지셔닝에 성공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3집 <Sound G.>는 한국 일렉트로니카 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곡가들을 섭외하면서 다른 걸 그룹들과 음악적으로 차별화되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 각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작곡 시스템의 차별화 전략은 각각의 음악적 특징과 소속 아이돌 그룹의 포지셔닝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하나의 곡에 2명 이상의 작곡가들이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 수행하기도 하고, 해외 작곡가 그룹에 ‘정식으로’ 라이센스를 구매하는 경우도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는데 기존의 주류 작곡가들에 기대지 않고 장르별로 전문화된 창작자나 집단(주로 인디 씬에 속해있는 창작자들)에게 곡을 의뢰하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게 특이하다.


경우에 따라 전속 작곡가와 협업을 이루는 일도 늘어났고 음악 외의 퍼포먼스와 스타일링에 있어서 독자적인 전문성을 발휘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현재 아이돌 팝을 이해하는데 있어 음악 외적인 부분들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마지막으로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아이돌 그룹을 운용하는데 있어 부분적으로 서브 레이블의 방식을 시도한다는 것도 최근 벌어진 의미심장한 변화다. 2010년 여름에 데뷔한 미스 A는 JYP엔터테인먼트의 서브레이블 AQ엔터테인먼트를 통해 활동 기반을 보장받는다. 물론 이것은 EMI나 유니버설 뮤직 같은 글로벌 음반사들이 아틀란타 뮤직이나 버진 레코드 같은 로컬의 인디 레이블을 인수, 합병하면서 고유한 지역성과 전문성을 흡수한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지만(따라서 여기에 대해선 다른 관점이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거대화되는 동시에 영역/장르별로 세분화되는 경향을 반영한다. 아이돌 팝이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기 때문에, 바꿔 말해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지배력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이런 변화는 한국 아이돌 팝, 혹은 주류 가요의 본질적 변화를 야기한다. 기존 가요의 음색이나 박자 구조를 벗어나는 노래들이 등장하고, 그 곡들이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히트하며(태양의 솔로곡 “웨딩드레스”는 국내가 아닌 캐나다의 음원차트 상위권에 진입, 몇 주간 머물렀다) 결과적으로 ‘팝’처럼 이해되고 소비된다.


4. 관점과 맥락: 시장과 산업 그리고 대중음악


사실 한국 문화시장의 면에서 연예 기획사의 성과를 논하는데 경계해야할 것은 분명하다. 산업적 성과 위주의 분석은 문화 생산물을 미학적 가치와는 별개로 분리시키고 투자와 수익이라는 도표로 단순하게 환원된다. 특히 한국에서 취약한 대중문화 시장의 대안을 거대 기획사의 성과 위주로 이해하는 건 보아나 동방신기, 원더걸스, 빅뱅의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해 ‘몇 대의 자동차를 수출하는 것 같은 효과’라는 식의 민망한 문화인식 수준의 표출로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 년 간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성과를 정리, 그 변화의 맥락을 살피는 일은 일단 의미심장한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이들 기업은 비판 이전에 필수적으로 수행되었어야할 관찰과 분석의 대상에서도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정적인 면은 존재한다. H.O.T 시절부터 논란이 되어온 소속 가수들의 불공정 계약 문제는 최근 SM엔터테인먼트와 동방신기 멤버들과의 재계약 건에서도 여전히 문제적으로 드러났고 JYP엔터테인먼트와 박재범(혹은 2PM)과 팬덤의 관계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아이돌 그룹과 기획사, 팬덤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여기에 외국인 출신 아이돌 멤버들이 점차로 늘어나고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관행에 정부가 개입하게 되는 변화들은 아이돌 문화를 단지 문화적인 것으로 볼 수 없게 만든다. 여기엔 한국의 민족주의와 보수주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나아가 노동과 복지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성찰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음악적으로 소수 프로듀서에 의존하거나 해외 작곡 그룹에 곡을 수주하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접근 방식이 결과적으로 싱글과 앨범 완성도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음악 비평의 기본이 되어온 미학적 판단의 근거를 더욱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과 2010년 사이에 광범위하게 진행된 한국 연예 기획사들의 질적 변화는 분명한 사실이고, 그것은 동시에 한국 대중문화와 연예 산업, 아이돌 팝과 청년(하위)문화, 그리고 팬덤과 스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복합적인 시선과 비평적 단서를 제공한다. 결국 중요한 건 맥락이다. 이 글 역시 그 안에 있다. 따라서 이 글은 그 동안의 여러 변화를 ‘어쨌든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안에서 소비되고 이해되며 다른 단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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