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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Mar 24. 2020

1_뇌종양에 걸렸다

종양을 발견하기 전의 이야기

뇌종양,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병이라 그런지, '그레이 아나토미'나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과 같은 의학드라마에 항상 빠지지 않는 병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 tvN

최근 방영한 슬기로운 의사생활 2화에서도 뇌하수체 종양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나온다. 내시경 수술로 진행할지 개두술로 진행할지. 의사들이 한 뇌종양 환자의 수술방식을 선택을 하는 이야기였다.

다른 병이었으면, 그냥 생각 없이 봤겠지만 2화에서만큼 나도 모르게 집중하면서 봤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 뇌하수체 종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뇌종양을 발견한 것은 연말이었다. 진짜 새해 바로 전날인 12월 31일에.

덕분에 공휴일이자 새해인 1월 1일을 그리 즐겁게 보내지 못했다. 더욱이 제대로 된 검사가 진행되지 않은 체 뇌하수체애 종양이 있는 거 같다는 의사의 소견만을 받았다. 덕분에 내 종양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수술은 가능한 건지, 뇌하수체에 있기는 한 건지 등과 같은 고민과 걱정을 1월 1일 하루 종일 해댔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 증상을 검색해도, 대체로 무서운 이야기밖에 없었다.

뇌종양을 처음 발견하게 된 계기는 '생리'였다.

원체 생리불순이었지만, 생리가 중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광고회사에서 인턴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광고회사에서의 생활은 상상 이상의 스펙터클하고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다큐에 나오는 광고회사 모습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거짓말이다. 대다수 미디어에서는 광고업의 아름다운 부분을 조명하고 있는데, 아니 진짜 현실의 광고일은 토 나올 정도로 바쁘다.

거듭된 야근..

미디어 속 비춰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전에는 끝없는 인내와 고통을 겪어야 함을 입사 3개월 후쯤에 깨달았다. 새벽까지 야근하고 집에 택시 타고 간 게 몇 번 될 쯤이었나.

어쨌든 나는 그 사실을 알 쯤에는 꽤나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계속된 야근 때문에 몸이 항상 피로했다. 하지만 실은 몸보다도 마음이 힘들었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참 많아서 지금 다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자꾸만 커져가는 초조함과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재직 중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경쟁 PT 아이데이션 회의를 들어가기 전, 불안을 감추고자 신경안정제 1알씩을 복용했다. 커피와 약을 함께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약 성분과 야근 때문에 졸려 죽을 거 같아 약과 커피를 동시에 복용한 적도 더러 있었다. 건강 해치기(?)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몇 번의 회식에서 상사가 건네준 술을 계속해서 거절하기 어려웠다. 새벽까지 먹고 하루 종일 토해본 적도 있었다.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 될 즈음에 광고회사에서의 내 게약기간은 끝났고, 나는 곧바로 하반기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수없이 지원했던 이력서들 중 절반 이상은 떨어지고 일부만이 합격했다. 그 일부 중에서 인적성, 1차 면접을 힘들게 합격한 회사가 딱 2곳이었다. 그렇다. 최종면접 간 회사가 2곳이었다. 이 관문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에 많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두 회사 다 최종 탈락했다.

그 이후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고 잠드는 게 어려웠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잘 수 있었던 내가 불면증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된 나날이었다. 거듭된 실패 이후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보내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 생리, 반년 넘게 안 했네?


고민을 하다가 나는 엄마와 함께 산부인과에 들려 검사를 진행했다. 생리 중단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을 알기 위해서였다.

사실 스트레스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지만, 그래도 언제까지나 생리를 안 하고 살 수는 없었으니까 혈액검사를 진행했다. 혈액검사를 통해 호르몬 수치를 파악하고, 이상이 발견된 부분에서 생리불순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혈액검사 전 앞서 실행한 초음파 검사에서 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혈액검사를 받았다.

근데 검사하고 나서 일주일 후, 그러니까 12월 31일 오후 6시쯤에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갑자기 전화 연락이 왔다.


프로락틴(유즙분비 호르몬) 수치가 너무 높아요. 검사 결과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 수치만큼 나왔는데, 이만큼 수치가 높다면 뇌종양을 의심해야 해요.

어안 벙벙한 심정으로 듣고 있는데, 의사는 그 말만을 하고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뇌종양? 내가 아는 그 뇌종양?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해당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는 이미 의사가 퇴근한 직후였다.

두려우면서도 황당한 마음으로 나는 프로락틴이 대체 무엇이고, 뇌종양이 어떤 병인지를 인터넷을 통해 알아봤다. 그렇게 201X년의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두번째 이야기로 내용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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