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진우 May 31. 2024

생각 없이 회사를 다니게 되면?

그 결과 : 개운해진다!

 언제부터인가 회사 분위기가 안 좋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 듯하다. 동료들 입에서 한숨과 고생담이 빈번하게 흘러나온다. 예전이 좋았지, 라는 말도 꽤나 자주 나온다. 상황이 급변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꼬집지는 못하겠다. 특정한 누군가가 유난히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직과 사업이 커지면서 따라오는 불가피적인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이해하려고 한다.


 사실 한동안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다. 퇴사하고 나서 할 일들을 대충이나마 계획하기도 했다. 계속 다니느냐 아니면 마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될, 단순한 일을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선택했다. 계속 다니는 쪽이다.


 다니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건 아니었다. 나름 열심히 해보겠답시고 회의 시간에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기도, 내 업무가 아닌 일도 보다 열심히 수행하기도 했지만, 희한하게 그럴수록 회사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갔다. 스스로가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나날이 이어졌고, 끝내 주변 사람들로부터 슬퍼 보인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때 나는 누구라도 내 등을 툭 치면 눈물 한 방울을 당장 떨어트릴 수 있을 만큼 지쳐있었다. 회사 일에 회의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무섭고 열받는 상사, 또는 고강도의 노동 환경. 이런 것만이 직장인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 외의 요소도 충분히 고통이 될 수 있음을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 


 나와는 다른 상황과 다른 직무지만, 종종 드라마 <라이브>에서 25년 차 경찰이 외쳤던 대사가 떠올랐다.


 “누가 감히 내 사명감을 가져갔습니까.”



 회의감으로 인해 잃어버리고만 나의 무언가를 저 인물처럼 사명감이라 일컫기에는 거창하고 민망하다. 나의 무언가는 그저 한 개인의 보잘것없는 열정이라고 일컫겠다. 저 드라마를 떠올리고 있자면, 나 역시 누가 내 열정을 가져갔냐고 고래고래 외치고 싶어졌다.


 슬픔과 원망과 혼란. 그런 것들이 뒤죽박죽 섞인 일상을 보냈고 어느 날 나는 문득 모든 것을 그만 생각하고 싶어졌다. 


더는 저 드라마를 떠올리며 비련의 주인공처럼 굴고 싶지도, 회사에 대한 불만을 상사에게 이야기하고 싶지도, 회사에 대한 개선점 또한 이야기하고 싶지도, 동료와 친구와 가족에게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들을 전부, 모조리 전부 그만두고 싶었다.


 ‘생각을 비워야겠다.’


 이왕 회사를 다니기로 결심한 이상, 나는 평온한 직장인이 될 필요가 있었다. 서서히 회사에 대한 생각을 비웠다. 그리고 정말로 지금, 나는 생각 없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


 불쑥 어떤 뾰족한 감정이 올라오게 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억눌렀다. “에이, 됐어.”라고 말하면서. 쿨한 인간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이 회사에서 하는 일이 뭘까, 라는 상념이 들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에이, 됐어! 난 이제 생각을 안 할 거라니까?” 주문 같은 그 말을 중얼거리면, 머릿속이 하얀 종이처럼 표백되어 간다. 말끔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러한 내 모습이 좋은 직장인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 그것이 설령 나를 괴롭게 만드는 생각일지라도, 거듭 생각하다 보면 프로젝트의 성과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 직장에서 예민하다는 말은 꼼꼼하다는 말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책임감이 있다는 말로도 이어지는 것 같다. 


허허 웃기만 하며 “다 좋아요!”라고 외치는 무성의한 직장인보다는 차라리 짜증 날 정도로 디테일을 챙기며 “이건 아니지 않아?”라고 외치는 직장인이 더 낫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 정도가 지나쳐서는 안 되겠지만.


그러니까, 다시 말해 요즘의 난 허허 웃으며 “다 좋아요!”라고 외치는, 내 본래 기준에서 좀 덜떨어지고 성의가 없는 직장인이다. 회사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는 동료와의 식사 자리에서도 난 그냥 말없이 웃고 만다. 가끔 동조는 해주지만 “에고, 왜 그렇대.”라는 수준으로만 동조해 준다. 마치 남 일처럼 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는 동료들이 그날도 열심히 불평을 말했다. 그러다가 한 동료가 슬쩍 내 눈치를 살피며 이런 말을 했다.


 “미안해요, 이런 이야기를 진우님 앞에서 해서.”


 내가 너무 남 이야기를 듣는 듯 굴었나 보다. 머쓱해졌다. 그러나 ‘아니에요, 그와 관련해 저도 고민이 많았어요. 공감해요.’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저으며 애매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다음 열심히 밥만 먹었다. 


 이렇게 지내니 훨씬 개운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슬퍼 보인다는 말보다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요새 어떠냐는 동료의 안부 인사에 아주 좋아요!, 라고 퍽 자신 있게 대꾸할 수 있는 정도다.


 정신 건강에는 확실히 좋다. 그러나 잃어버린 나의 일부가 이따금, 아주 이따금 그립다. 어떠한 패기와 노력과 진심.... 그런 열정을 잃은 나는 모난 부분 없이 둥글어진 것 같다. 깎이고 또 깎이는 과정이 직장인의 숙명인 걸까. 그건 좀 씁쓸한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무엇이든 끝이 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