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의 심장 속으로

열화

by 서동욱

거대한 철골이 하늘을 찢고 솟아 있었다.

수십 층 높이의 리프트가 쉼 없이 오르내리며, 마치 살아 있는 괴수의 심장처럼 요동쳤다.
나는 그 앞에서 한없이 작은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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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물러설 곳도, 돌아갈 길도 없는 이들이 하루를 걸고 싸우는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의 건설 현장.
여기에는 각자의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모인다.
누군가에게 이곳은 패배자들의 무덤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땅이다.
절실히 살아가고자 하는 자에겐 두 번째 기회의 땅이고,
모든 걸 놓아버린 자에겐 하루치의 보수가 전부인 곳이었다.


이 거대한 현장에는 하루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투입된다.
삶의 마지막 끈을 붙잡기 위해, 다시 일어서기 위해,
그리고 단지 ‘살기 위해’.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나는 실패자였고, 어쩌면 도망자였다.


3년간 운영하던 체육관을 그만두고, 모아둔 모든 자금을 잃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사실은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쳐온 것이다.
사람들에게 내 실패의 치부를 보이기 싫었고,
지인들의 연락을 피하며 세상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이곳의 소리는 전쟁터와 닮아 있었다.
땀과 먼지, 쇳소리, 사람들의 함성,
그 모든 것이 얽혀 귀를 울렸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이곳은 절망만으로 채워진 곳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빛은 불안이 아니라 염화였다.
말투는 거칠었지만, 그 속엔 살아 있겠다는 생의 맹렬히 숨 쉬고 있었다.


내가 이곳을 알게 된 것은 한 중견 건설업체의 반장님 덕이었다.
그는 내 성실함을 보고 말했다.
“진짜 돈 벌려면 대기업 현장으로 가. 거긴 하루 품값이 두 배야.”
그렇게 나는 이곳, 거대한 요새로 들어왔다.


처음 마주한 현장은 압도적이었다.
보안은 군사기지처럼 철저했다.
홍채 인식, 보안 앱 설치,
출근만 해도 20분이 걸리는 광활한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에서 나는 ‘골리앗’을 만났다.


6만 명의 인파를 뚫고 도착한 내 작업 구역.
거대한 리프트 골리앗은 철옹성처럼 서 있었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철골이 뒤틀리며 괴생명체 같은 소리를 냈다.
그 리프트는 사람들을 삼키듯 500명씩 실어 날랐다.
누군가는 빚을 갚기 위해,
누군가는 다시 사회로 나가기 위해,
누군가는 단지 오늘을 버티기 위해
골리앗의 심장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윽고 내 차례가 왔다.
리프트의 철문이 열리고, 쇳조각이 부딪히는 소리 속으로 나는 들어섰다.
그 금속의 심장 속으로, 내 하루도 삼켜졌다.


도착한 곳은 8층. 내가 일하던 자리였다.
나는 이곳을 절망의 끝이라 여겼다.
복서로서 실패했고, 체육관 관장으로서도 무너졌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다.
이곳은 끝이 아니라 생의 맹렬히 다시 피어오르는 시작점이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나는 살아가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보았다.


나는 오늘도 거대한 골리앗의 심장 속에서 파고드는 다윗으로,
내일을 지탱하기 위해 다시 그 철문을 통과한다.
나는 여전히 작고 초라하지만,

그 안에서 불타는 혼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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