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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욱 Oct 11. 2024

불안 속에 어려움 활용하기

매 순간 어려움은 찾아온다.

일본 시합 이후 나는 체육관에 나가지 않았다. 은퇴 권유를 받고도 묵묵히 운동을 이어갈 정도로 나는 뻔뻔하지 못했다. 결국,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복싱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선수로서 더 활동하고 싶은 열망이 가시지도 않은 채. 지도자의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지도자의 삶은 선수 생활에 대한 그리움만 더 짙어지게 했다.


새로운 생활에 흥미보다는 회의감이 먼저 들기 시작했고, 며칠씩 잠들지 못해 불면증에 시달렸다. 불면증으로 인해 무너진 불규칙한 생활 방식은 육체적으로 나를 쇠약하게 만들었고, 정신적으로도 지친 상태였다. 복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다. 복싱을 쳐다보는 것도 괴로워. 복싱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너무나 복싱이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절망스러웠다. 너무 힘들어서 누구와도 만나기 싫었다. 가족, 친구, 지인들과 복싱과 관련된 모든 관계자와도 연락을 끊었다. 복싱에 대한 미련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선수 시절 목표를 향한 강한 갈망은 강한 부정으로 바뀌어 숨통을 조여왔고, 이대로는 죽을 것만 같았다. 도저히 복싱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없어, 복싱 코치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살기 위해 뭐든 해야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생각할 시간조차 없도록 정신없이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물류센터, 반도체 공장, LED 조명 회사, 건설업, 제약회사, 냉동육류 운반, 각종 행사 아르바이트 등. ‘복싱이 아니라면 뭐든 좋다.’라는 생각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나 복싱 외에 일이라고는 해본 경험이 없던 나에게 사회생활은 쉽지 않았다.


처음 해보던 일들은 너무나 생소하고 어렵기만 했다. 매번 실수를 연발하여 혼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내가 여기서 뭐 하는 있는 것인지 허탈감만 몰려왔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우울함만 몰려왔다. 제대로 된 선수 생활에 마침표도 찍지 못한 채. 새로운 일에 대한 흥미도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가 의미 없게만 느껴졌다. 살기 위해 복싱과 멀어지기를 선택한 나의 삶은 위태로운 나날로 나를 더 궁지로 몰아넣었다. 복싱에 대한 그리움만 더 커졌고, 복싱이 너무 하고 싶었다. 너무 원망스러웠다. 나 자신이 비통했다. 복싱을 벗어난 삶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불안함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의미 없이 지내오던 어느 날 우연히 본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을 보게 됐다. 예전에 긍정적이고 꿈 많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쇠약해지고 초라한 현재의 나를 보며, 나 자신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동안 정신 놓고 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다. 그동안 망가진 나의 삶을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쇠약해진 몸을 일으키고자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집 주변 운동장부터 뛰기 시작했고,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혼자 복싱을 시작했다. 주먹을 뻗고 땀을 흘리는데 처음 복싱을 배우던 때가 생각났다. 복싱은 여전히 재미있었다.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너무나 가벼웠다. 나는 여전히 복싱을 사랑하고 있었다. 내가 복싱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선수는 할 수 없지만, 복싱은 할 수 있으니깐.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의 삶을 인정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순간 나는 조금씩 회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해보고 싶던 취미들도 시작했고, 여유를 되찾기 시작했다. 안 해보던 독서를 시작하고, 나에 대한 탐구도 시작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생각하며, 깨달은 것은 나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내 삶은 망가지지 않았고, 그동안 열심히 잘해왔다고,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걱정 없는 인생을 바라지 말고, 걱정에 물들지 않는 연습을 하라." – 알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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