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의 밤
나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듯 쓰러졌다.
“여기가 내 인생의 추락 점인가…?”
눈앞이 흐릿해지고, 천장의 조명들이 희미하게 번졌다.
“원, 투, 쓰리…” 카운트가 이어졌다.
열이 세어지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았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중력이 몸을 짓누르듯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애써 일으켜 세웠다.
심판은 내 동공 상태를 확인하고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싸울 의사를 물었다.
정면에는 나를 노려보는 상대 선수의 매서운 눈빛.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사각의 링이었다.
조금 전, 상대의 어퍼컷에 맞고 쓰러졌던 것이다.
누구도 지기 위해 링에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예외였다.
이 경기는 내 은퇴 시합이었다.
한 달 전, 스승이자 매니저였던 관장님에게서 복싱을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번 시합을 마지막으로 복싱을 그만둬라.”
그 한마디는 내게 사망선고 같았다.
트레이너도, 스승의 지도도 없이 혼자 준비한 시합이었다.
체중 감량부터 훈련, 식단까지 모든 걸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국제전.
이미 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시합을 물을 수도 없었다.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끝나길 바랐다.
그렇게 마음을 비운 채 링에 올랐고,
바람대로 순식간에 쓰러졌다.
2라운드 1분 43초.
내 복서 인생이 끝난 시간이었다.
경기 후 관중의 환호가 멀리서 들려왔다.
승자와 패자가 뚜렷이 갈리는 흑과 백의 세계.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링을 내려왔다.
씁쓸했지만, 이것이 내 마지막 시합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남은 것은 현실뿐이었다.
대전료 41만 원.
세금과 트레이너 몫을 제하면 손에 쥔 건 21만 원.
친구에게 빌린 교통비 9만 원을 갚고 나니 통장에는 12만 원이 남았다.
허름한 방 한구석, 먼지 쌓인 글러브에서 시선을 회피했다.
밥도 목에 넘기기 힘들었다.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 하나와 과자 한 봉지를 사 들고 돌아오며,
이게 내가 버틴 세상의 무게였음을 실감했다.
상실감에 일주일간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슬픔에 잠기는 시간도 현실은 냉혹했다.
생활비가 떨어져 더 이상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잠시 슬픔도 내게는 사치였다.
떨어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복서를 꿈꾸던 내가 아닌,
하루 살기도 벅찬 일용직 노동자로.
모든 게 허무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아직 불씨가 남아 있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다시 링에 오르고 싶어.”
오랜 친구에게 내 생각을 털어놨지만,
친구는 담담히 말했다.
“그만해도 돼. 할 만큼 했잖아.”
그 말이 내 가슴에 깊게 꽂혔다.
위로가 아니라 상처였다.
그날 이후, 나는 천천히 꿈에서 멀어졌다.
잊고 싶었지만, 완전히 잊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의 추락 점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시작점에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