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이 별 거 있나요?

내가 흡족하면 됩니다.

by 김욱곤
다운로드.jpg 제가 일하는 곳입니다.


척추관절 전문병원으로 이직하고 나서 가장 눈에 띄게 편한 점이 있다면 대체로 근무 시간이 일정하다는 점입니다. 과(科)가 8과까지 있다 보니 겨울철에는 과의 특성상 환자가 최고점을 찍지만, 그 시기를 제외하고는 오고 가는 시간이 일정하고 응급수술은 눈을 씻고 보아야 보일 정도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응급이 생기면 바짝 신경이 쓰입니다. 대략 혈관이나 신경 손상, 구획증후군의 경우는 되도록 빨리 해 주어야 하는 응급에 해당합니다.


오늘은 인공관절을 시행한 무릎에 1년이 지나 화농성 관절염이 생겨 78세 여자분이 내원하셔서 응급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관절 내에 있는 고름을 제거하여 깨끗이 해야 하고 노출된 조직도 제거해야 하며 작년에 고정한 인공관절이 원인이라면 그 또한 손을 봐주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무릎이 너무 아프다시며 마취 자세를 취하는 것도 힘들어했지만, 다행히 수술을 잘 마쳤습니다.


살면서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노출되고 그로 인해 마음도 많이 상하며 몸도 축나겠지만, 그래도 이만하니 다행이다. 아니면 이렇게 치료 방법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스스로 위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당장 아프고 힘드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한참 뒤의 일입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라고 교훈하는 이면(裏面)에는 이처럼 공감해 주고 위로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일 년에 몇 안 되는 응급의 날인 오늘, 시간을 넘겨 일하는 게 뭐가 좋겠냐마는 그래도 요즘은 내 마음도 꽤 평안합니다. 수술하는 의사들은 연신 미안하다, 죄송하다고 인사하지만, 저도 내내 부담 갖지 말고 수술하라 부탁합니다. 이는 나에게 미안한 일도 아닐뿐더러 환자들이 고마워하고 안도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족한 일입니다. 이제 그런 인사를 받지 않아도 마음이 여유로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내 나이 몇 살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건강을 유지하려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지만, 가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때가 언제인지는 스스로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생각과 몸을 젊게 유지하려 애쓰는 내 모습이 요즈음 이러합니다.


이 글을 마치려는 이 순간 3~4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원장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이는군요. 의사들은 이 맛에 진료합니다. 일하다 보면 귀찮고 고달픈 순간이 왜 없겠습니까?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제아무리 무장한다 해도 문득문득 치고 올라오는 감정의 물결은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요. 하지만 이렇게 좋은 결과 앞에서는 자잘한 감정의 조각들조차 스르르 녹게 하는 묘한 기운이 있습니다.


퇴근하는 길도,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잠시 행복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최대한 길게 이 보람을 느껴야 할 텐데 지나온 세월에 비해 남은 세월이 상대적으로 짧을 듯하여 그것이 늘 아쉽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늘 보람으로 가득하시면 좋겠습니다. 좋지 않은 것들로 가득한 삶이라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고 앞으로 펼쳐질 희망에 기대를 걸면 좋겠습니다. 손익(損益)을 따지면 그 경중(輕重)이 어디 한쪽에만 치우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이문(利文)은 남겠지요. 그런 삶에 젖어드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