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 시절

그렇게 지냈습니다.

by 김욱곤
다운로드.jpg (이미지출처:엘리트학생복 블로그)


중학생까지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는데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체감으로 확연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친구들 사이의 묘한 관계일 것입니다. 초, 중학교 동기가 대부분인 동갑내기 사이에 소위 형이라 불리던 동기들이 몇 명은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제법 다양해서 역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던 경우는 비평준화 고등학교이다 보니 재수해서 들어온 친구,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휴학했다가 다시 온 친구, 가끔은 정학으로 인해 수업일수가 모자라 유급했던 경우 등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랬습니다.


그중 누가 보아도 대놓고 형 같아 보이던 동기 형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형은 우리와 3살 차이가 났는데 얼마나 소탈하고 밝은지 우리와 어울리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형, 형 부르며 따랐고 그 형도 웃음 많고 정이 많아서 우리 동기들에게 인기도 많았습니다. 졸업하고도 가끔 소식을 듣곤 했는데 어느 시점부터 연락이 끊겨 아쉬운 판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가장 껄끄러운 대상은 대부분 한 살 차이의 형들입니다. 분명 형은 형인데 친한 사이가 아니면 대개 대놓고 형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한쪽은 기어이 대접받고 싶어 하며 다른 한쪽은 형으로 대접하지 않는 묘한 줄다리기가 졸업할 때까지 지속됩니다. 서로 친하게 지내면야 그런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친구 사이라는 게 이처럼 설명하기 힘든 기류(氣流)가 분명 존재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며칠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지명하시더니 대뜸 애들에게 반장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말이 반장이지 감투는커녕 거의 총무요 회계이며 청소 시간에는 관리 감독이고 체육이나 교련 등의 야외수업이 있는 날에는 어디로 모여야 하는지 전령 역할까지 도맡아야 하는 심부름꾼이었습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힘든 일은 이 두 계층 간의 융화였습니다.


반장이 별것이야? 네가 반장이면 다야?라는 가시가 그 형들에게 조금씩 있어서 자기들을 달래고 대접해 주지 않으면 조그마한 전달 사항에도 쉽게 협조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거추장스러운 직함이 반장이라는 사실을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 알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새롭게 알게 된 다른 한 가지의 사실은 어디서든 숨어있는 천사가 늘 있다는 것입니다. 묵묵히 숨어 지내던 강력한 형 덕분에 3학년이 되도록 비슷한 일로 애먹은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만일 내가 상대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태도를 유지하면 지냈을까? 늘 생각했습니다. 베풀었을까, 아니면 불편하게 대했을까? 상상하다가 어떤 결론도 얻지 못한 채, 그 청소년이 이제는 노년을 맞으려 합니다. 굳이 돌려 말하자면 이제껏 내 편한 대로 살아왔다는 말인 듯하여 가끔은 얼굴이 붉어질 때도 있습니다. 나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로구나! 싶어 반성하게 됩니다.


이제는 나도 때론 선배로, 좋은 동기로, 후배로 살아가게 되지만 시간이 되어 내 생을 정산받는 날이 되면 어떤 성적표를 받게 될까요? 수우미양가. 기왕 받는 거 수, 우(秀, 優)로 우수(優秀)하게 마치면 기쁠 테지만 낙제점이나 면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이제 도움을 주며 지내야 할 텐데 아직도 이기심이 많아 늘 받는 걸 꿈꾸며 삽니다. 이게 나란 사람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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