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형 앞에서는
중,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심지어 같은 마취과의 의국까지 모두 선배인 형이 한 분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학은 같은 학번이지만 의국에서 다시 1년 선배로 모셨으니 늘 형이라는 호칭이 입에 붙어 지냈습니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도 선생이라는 호칭이 일반적인 병원 조직에서 형이라는 호칭은 욕먹기 좋은 사안이었지만 그냥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더 기가 막힌 우연은 아내끼리도 대학 친구 사이입니다. 이런 공통점 덕분에, 오랜만에 만나도 그냥 애틋하고 반갑습니다.
이 형은 군의관 때 배정받은 병원에 그대로 눌러앉아 30년을 훌쩍 넘겨 근무하고 있습니다. 전남의 한 바다 쪽으로 위치하는 이 병원은 한센병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정형외과적 수술을 주로 담당하며 피부과 진료도 담당하는데 해당 분야에서는 명성이 자자합니다. 그곳에서 마취하고 통증 치료도 하면서 행정 일도 맡아 부원장으로 재직하더니 몇 년 전부터 원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르고 빼빼한 사람이 살찔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없지만 신년 예배에서 낭독한 신년사를 다듬어 그 해의 병원 비전으로 공유하고 홈페이지와 원보(院報)에 고정적으로 게재하더니 발행 전에 저에게 교정을 부탁하곤 합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기에 몇 년째 봐주고 있습니다만 형도 몇 년을 계속하다 보니 제가 손보고 고칠 만한 수준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그냥 어색한 표현을 잡아주거나 순서를 정렬해 주며 그도 저도 아니면 맞춤법 교정으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며칠 전에는 신년도 아닌데 새로운 원고를 부탁해 왔습니다. 아는 분께서 회고록을 출간하시는데 추천사를 부탁받았답니다. 그 또한 교정을 보고 잠시 짬을 내어 다듬고 다듬어 보내고 나면 여지없이 답장이 옵니다. 훌륭해! 고마워! 역시 달라!
살면서 남에게 도움을 주고 살았던 적이 얼마나 되나 반추해 보니 그다지 기억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도움 주는 일이라 여기며 지낸다면 제법 높이가 쌓였겠구나! 싶지만 사랑하는 형님은 늘 이런 식으로 고맙다는 표현을 놓치지 않는 걸 보면 그 높이나 면적이 나보다 더 광대(廣大)할 게 분명합니다.
그 와중에서도 그나마 다행인 건 원고를 받을 때마다 내 성정(性情)상 귀찮아할 만도 하겠지만 기쁨으로 알고 하는 그 뒷면에는 이러한 형님의 배려가 큰 몫을 했을 것입니다. 이마저 없었다면 나는 벌써 이 일을 내려놓았을 게 분명합니다. 비록 일 년에 한두 번의 수고이지만 내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무게감은 상상을 초월했을 거라는 넋두리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할 것인가 묻는다면 정답에 가까운 답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실행하느냐? 더 나아가 늘 유지하느냐? 가 중요할 겁니다. 정성과 따스함은 그 선명한 답 속에 분명 포함될 테지만 사실 우리의 감정선은 거의 부정적인 선 안에 와 있습니다.
형(兄)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곧이곧대로 해석해도 그 말은 참 명언입니다. 형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고로 형은 참 큰사람입니다. 나도 그리돼야 할 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