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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kipedia Jun 27. 2015

이방만남_ 왕휘궈

Ep#3 철학전공 왕휘궈 형 - 칭짱열차에서 만나다.

티벳으로 가는 칭짱열차

2011년 5월 22일, 아마 북경에서 칭짱열차를 타고 라싸로 향하고 있던 이틀째 되던 날이었을 것이다. 대지의 고도가 2000m를 넘어서 점점 더 올라 감에 몸은 점점 붕 뜨는 느낌이 들었고 이상하게 잠은 계속 쏟아졌고 잠만 계속 자니 몸도 퉁퉁 불어버렸다. 나는 종점역까지 가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구간구간을 타고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잠에 들었다가 깼다를 반복하고 눈을 떠보니 나와 같은 칸 그곳에 한 명의 중국 아저씨가 있었다. 그 분은 명백히? 아저씨 같은 아저씨였다.


나는 칭짱열차가 가로지르는 창 너머로 대륙의 대지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같은 칸에 있었던 아까 그 중국 아저씨가 내게 고량주를 한 잔 하자며 말을 걸어왔다. 독한 이 고량주를 맛 보라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그 분은 생각했을 것이다. 고량주를 한입 먹고 얼굴이 발개지고 헛기침을 콜록콜록하는 나의 모습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술 잘 마시는 민족 한국인이었다. 나는 흔쾌히 아저씨의 대작 권유에 동참하게 되었다.

아저씨의 이름은 왕휘궈(王煜國)다. 한글로 쓰면 왕욱국아저씨다. 나랑 같은 욱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의 이름이 매우 반가웠다. 사실 그는 아저씨가 아니다. 나보다 2살 많은 84년생 형이었다. 나는 아저씨한테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84년생. 왕휘궈형은 중국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고 방학을 맞아 라오스인가 놀러 갔다가 옥으로 된 장신구를 엄청 떼다가 자기 고향에 팔러 가는 길이었다. 나는 공산국은 중국에서 과연 어떻게 어떤 철학을 가르칠까 매우 궁금한 게 많았다. 우리는 말은 잘 안 통했지만 그래도 나의 미약하나마 아는 한자로 글을 쓰고 또 영어를 간간이 쓰며 이야기를 나눴다. 난 또 어디서 주워 들은 건 있어가지고 형과 중국의 공산 정책 아래의 철학은 과연 어떤지, 진짜 공자와 맹자를 가르치지 않는지 여러 가지를 나눴다.


우리는 고량주를 뚜껑에 서로 따라 돌아가면서 술을 마셨고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형은 참 인상이 푸근한 사람이다. 그의 미소는 백만 불짜리가 틀림없다. 나는 형의 환한 미소에 빠져버렸다. 형은 내가 술을 잘 마시자 자기는 더 이상 마시지 못하고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나는 형을 중국 말로 형님이란 뜻인 '따궈'라고 불렀다. '따궈'! 중국 무협영화에서 본 것을 보고 동작까지 하며 '왕따궈'!라고 불렀다. 형은 내가 형에게 따궈! 라고 할 때마다 또 그 푸근한 웃음을 보이며 매우 좋아했다. 그렇게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형은 취기가 올랐는지 노래를 한 곡 뽑고 싶다고 했다. 와~ 이 얼마나 멋진 일이란 말인가 티베트로 가는 기찻길 안 우연히 만난 친구의 노래 한 곡조!



W : 내가 노래 한 곡 할게!


J : 오! 노래요? 제목이 뭐예요?!


W : 팡요!(친구)



형은 중국 노래인 '팡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안재욱이 '친구'란 한국 제목으로 번안해서 부른 곡이라 나는 그 음을 알고 있었다. 형이 부르는 노래는 정말 구수했다. 진심을 다해 형이 부르는 노래에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그 칸 안에 있던 모든 승객은 형을 향해 박수를 쳤다.

이것은 내가 항상 바랐던 기차여행의 묘미다. 이곳은 현지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삶의 이야기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최접점이다. 비행기보다 느리고 자동차 보다 빠르지만 기차는 확실히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좋은 분위기가 있다. 먹을 것도 나눠먹을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그게 대화를 더 돈독하게 하는 요소 같았다. 많은 이야기하다가 또 창 밖을 바라보고 또 그러다가 이야기하다가를 반복하며 말이다.


 

형은 이제 곧 내려야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형의 이메일 주소는 정말 귀엽게도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hugo였다. hugo boss에서 따 왔단다. 정말 귀여운 형이다. 형은 나와의 만남이 아쉬웠는지 다음 역에서 내려서 자기네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의 제안이 나는 너무 고마웠고 너무 그러고 싶었으나 티벳에서 계약된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형은 너무나 아쉬워했다. 나도 너무 아쉬웠다. 이 아쉬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을까.....?

 

형은 형의 보따리를 주섬주섬 거리더니 라오스에서 떼온 옥부처 장신구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나도 줄 것이 없어서 형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미니쉘을 주었다. 그리고

그리고 형은 펜을 들고 종이에 어떤 한자를 적었다. 그때 나는 온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아마도 그건 기적이었을 것이다. 그 형이 적은 한자어는 내가 정말 너무 좋아서 외우고 있었던 중국 한문이었으니까. 내가 학교 다닐 때 들었던 한자어 교양에서 수백 개의 한문 풀이를 했었으나 유일하게 기억해 두었던 그 한문


海內存知己 해내존지기

天涯若比隣 천애약비린


마음이 통하는 친구는

서로가 세상 끝에 있을지라도 친구다.

- 중국 시인 왕발의 한시 -


당나라 시인 왕발이 자신의 친한 친구와 이별하면서 써준 이별시, 내가 너무 사랑해서 멀리 있는 나의 친구에게 막 문자로 날렸던 그 시. 그 시를 형은 내게 직접 글로 써주었다. 그리고 내가 하필 그 한시의 뜻을 알고 있다 생각하니 나는 기분이 묘했다. 이것은 인연이다. 해내존지기 천애약비린......... 이 짧은 순간이지만 형은 날 친구라고 생각해 주는구나. 나는 감사했다.


왕휘궈 따궈는 정말 나의 인연이다. 따궈와 같이 내리지 못 해서 너무나 아쉬웠다. 형은 형의 고향역에 도착했고 그렇게 포옹을 하고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왕따궈! 짜이찌엔...............




왕휘궈형의 '팡요' 영상







형이 떠난 뒤, 열차는 서서히 해발 3000m를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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