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_1 동갑내기 일본인 부부 야마자키 - 카트만두행 버스 속 만남
우기雨期 의 포카라, 호수 위에는 항상 뭉게구름이 가득했으며 햇살은 그 사이를 비집고 수면 위로 반사됐다. 수리아 덕에 그래도 밝고 명랑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저 멀리 안나푸르나와 호수를 등지고!
내가 카트만두까지 타고 가야 할 버스는 소형버스였는데 나름 고급이었다. 몇몇의 관광객과 함께 카트만두로 향했다. 내 옆에는 동양인 커플이 앉았는데 한국인일까? 일본인일까?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약 구불구불한 도로를 8시간을 동안 가야 한다. 그래서 버스에 타자마자 말을 걸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J : Where Are you from?
Y : I'm from Japan
그랬다. 그 두 분은 일본인이었고 신혼부부였다. 신혼여행으로 이곳 포카라까지 왔다고 했다. 더 신기했던 건 신혼여행인데 둘 다 자기 키 만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둘은 원래 여행을 좋아해서 이렇게 계획을 짰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젊은 생각에 그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 순간 나도 나의 동반자와 이곳 포카라에 올 것을 상상했다. 나는 사실 매우 심심했기 때문에 그들이 신혼부부임에도 불구하고 눈치 없이 말을 걸었다. 미안했지만 재밌었다.
야마자키 요헤이와 야마자키 유카리, 요헤이의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았고 유카리는 나랑 동갑이었다. 세상에! 그들은 고등학교 동창이며 같은 타악기 동아리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오다가 며칠 전에 결혼을 했다. 둘이 취미가 맞아서 둘 다 회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기적으로 일본 내 타악기 순회공연을 하고 트래킹을 하고 캠핑을 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특히, 요헤이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니고 사물놀이를 매우 좋아하며 장구 악기를 너무 좋아해 연습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우리는 동갑이었고 문화가 비슷한 이웃나라의 사람들이었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느낀 거지만 우리의 공감대는 무지하게 많았다. 신기한 건 우리의 학창시절의 봤던 만화와 갖고 놀았던 게임이 동일했다는 것이었다. 하긴 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만화와 게임은 다 일본 꺼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다 치고 요헤이가 그런 사실에 더 놀라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자기는 자기네 나라꺼지만 난 외국인인데 자기네 나라 꺼를 더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J : 요헤이~ 너 슬램덩크 좋아해? 슬라무덩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Y : 오옷! 너 슬램덩크 알아!? 나 슬램덩크 무지 좋아해!
유카리도 엄청 좋아할걸? 그지? / Y2 : 엉! 나도 좋아해!
우리 이야기가 깊어지게 된 요인은 바로 슬램덩크였다. 슬램덩크로 우리가 하나가 될 줄 그 누가 상상했겠는가. 하지만 일단 슬램덩크를 이야기하려면 각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맞춰봐야 했다. 왜냐면 나는 슬램덩크의 인물들의 일본식 이름은 몰랐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먼저 등장인물들의 특징을 설명해가면서 서로의 나라의 이름을 설명해줬다. 예를 들어 강백호! 빨간 머리 주인공은 사쿠라기 하나마치!
J : 강백호, 빨간 머리 주인공 이름이 뭐야?
Y : 아~ 사쿠라기 하나마치!
J : 그럼 서태웅은... 사쿠라기의 라이벌!
Y : 루가와!
J : 그럼. 3점 슛 잘 쏘는 애는?
Y : 미쓰이
J : 오!! 그럼 북산 주장은!?
Y : 아카기!
J : 오~~~!!
J : 요헤이 너는 슬램덩크 보면서 운 적 있어?
Y : 당연하지!! ㅋ
J : 어느 장면에서 울었어?
Y : 나는... 음 너무 많지만 마지막에 강백호가 서태웅한테 패스할 때? 재욱 너는?
J : 어! 나는 정대만이 안 감독한테 다시 돌아와서 울 때 너무 슬퍼서 나도 울었어. ㅠㅠ
Y : 맞아!! 그 장면도 너무 감동이야!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서로의 문화를 알고 있다는 데서 깊어졌다. 만화뿐만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이야기 그리고 내가 중학교 때 좋아했던 일본 가수들과 일본 배우들 이야기, 그리고 요헤이는 소녀시대가 너무 좋다며 이야기를 했다. 요헤이가 소녀시대 이야기를 해서 생각난 거지만 참 지금의 한류 열풍이 부는 걸 보면 신기하단 생각이 든다. 불과 15년 전만 해도 학창 시절 때 대부분 일본의 것들이 주류였는데 지금은 한국의 것들이 아시아의 주류가 돼 있는 걸 보니 새삼 놀랐다.
사실 나는 일본에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더 이야기가 깊어질 수 있었다. 대학 다닐 때에도 일본 경제론이라던지 일본 정치 발전사 같은 교양과 책들을 본 적이 있어서 이야기하기가 쉬웠다. 덕분에 우리는 문화를 넘어 아시아의 정세나 각국의 경제 상황 그리고 각국의 미래 전망 등을 나눴다. 요헤이와 유카리도 이런 사회학적인 측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우린 더 잘 통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하필 내가 배웠던 교양과목이나 이런 것들로 이야기가 가능한 것을 보면서 배움의 중요성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꼈다.
우리는 중간에 휴게소에서 내려서도 같이 식사를 하면서 더욱 인연을 쌓고 있었다. 내심 신혼부부의 여행에 불청객이 되지 않았나 눈치가 보였지만 그들 부부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오히려 나를 챙겨줬다. 그렇게
여차저차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6시간이 후딱 갔다. 우리는 곧 카트만두에 도착 예정이었고 나머지 두 시간은 말없이 잠을 자면서 갔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