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요즘 어떻게 되었나요?

이대로라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것 같은 가상세계 실험이 나아가야할 방향

by 권욱상
Screenshot 2026-01-26 at 5.38.44 PM.png 단순히 “거 봐라, 내가 안 된다 했지?”를 말해서 뭐 하나. 메타버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모색해보자.


메타가 가상현실에 투자를 줄이겠다고 발표함과 동시에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고 한다. 디자인 업계에 있던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오래전부터 메타버스 무용론을 펼친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 분야로 진출하려는 동료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많아졌고, 이것을 생업으로 삼게 된 그들에게 굳이 나의 부정적인 전망을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속에 작은 숙제 같은 것이 생겼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많은 고찰을 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던 터라, 언젠가 한번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을 정리해두고 싶었다.


Screenshot 2026-01-28 at 8.39.15 PM.png 비스듬한 각도에서 내려다보는 쿼터뷰(아이소메트릭) 방식을 채택해 2D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3D처럼 연출한 리니지(1998). 같은 해 스타크래프트도 동일한 방식으로 출시되었다.


마음 같아선 3D 그래픽으로의 업그레이드 후 매력을 잃어버린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둘 다 98년 출시)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싶지만.. 스크롤의 압박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단 내 대학 2학년 시절 경험부터 얘기해 보자. 나는 조형대(디자인 학부)에서 당시에는 흔치 않던 전과생이었다. 공간디자인(건축)에서 시각디자인(그래픽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었는데 이내 알게된 것은, 시각디자인(2D 베이스 작업을 많이 하는)학과 친구들이 그래픽디자인에 비해 건축(3D)을 조금 더 가능성이 많은 세계, 일종의 상위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튜브는 커녕 스마트폰도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제 막 컴퓨터를 사용한 창작을 배우기 시작하던 시기의 대학생들은 코딩으로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만든다거나 3D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친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곧 영화 아바타(2009)가 개봉되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30대가 되어 진학한 미국 대학원(역시 그래픽디자인)에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처럼 건축 혹은 엔지니어링 배경이 있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원래 하던 것을 그래픽디자인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애초에 실용 학문인 디자인을, 의뢰인의 제안 등 아무런 출발점 없이 수행한다는 것은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학생들에겐 쉽지 않은 것이었다. 마치 순수 미술가처럼 작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이런 경우, 학생들은 생전 해보지 않던 나는 누구인가(아이덴티티 찾기)”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자기 작업에 자기가 원래 공부하던 분야의 무언가를 가져와 어색하게 욱여넣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이뤄진다.


예를 들어, 건축이 싫어 그래픽디자인을 배우러 왔는데, 결국 건축으로 자기 정체성을 만들게 되고, 그래픽디자인 작업물에까지 반영한다던가 하는. 사실 이건 디자인 분야뿐만 아니라 원래 인간이 극복하기 힘든 패턴이기도 하다. 과거의 것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해 보지만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된 것을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이 주제는 완전히 새 지면이 필요할 것 같으니 나중에 따로 작성하기로 하자. 또 이런 어색한 시도들이 자주 나타나는 이유가 있다면, 디자인 대학원에서 보통 학생들이 만드는 작업이란 것이 추측성/실험성(speculative) 그리고 단발성 작업이 되기 쉽다는 시스템적 한계 때문이다. 아주 가끔은 첫학기부터 석사 논문학기까지 불과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상당히 깊은 수준의 빌드업을 해내는 수재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흔치 않은 일이고, 보통은 자신이 다루던 오브제나 미디엄을 나의 일부로 만들어 작업에 접목하기 같은 것을 시도하게 되어있다. 다시 대학원에서의 경험으로 돌아가서


디자인 분야라는 곳의 특성상 형식을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에, 기술 발전에 따라 형식을 결정짓는 미디엄이 계속해서 달라진다는 것도 이 패턴을 반복 재생산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아방가르드하고 미래지향적인 무언가를 찾는게 졸업 후의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3D/가상현실을 수업에 가져오게 된다. 3D-디자인의 한계를 느끼고 반대로 함축적이고 단순해보이는 2D-디자인의 특성에 매력을 느껴 저차원으로 내려온(?) 나조차도 초반에는 그런 시도를 해보다가 좌절하기를 반복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도 ‘3D를 이렇게 깊게 팔거면 왜 전공을 바꿨나?’ 싶은 마음이 들거나, ‘난 왜 3D가 주는 가능성의 세계가 여전히 싫은걸까?’ 고민해 보기도 하면서, 어딘가 공허하게만 느껴지던 3D 디자인의 본질과 한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볼 기회들을 가질 수 있었다.


고민의 시간들.. 그리고 그 결과.


2010년대 중-후반(빅테크의 시대), 대학원 졸업 후 몇 년이 지나자 주가를 높이려는 기술 기업들의 경쟁적인 미래장사가 시작됐다. 페이스북은 포켓몬 고를 비롯한 AR/VR의 인기, 그리고 언택트의 흐름을 타고 메타버스를 들고 나왔다. 마크 저커버그 휘하의 말빨 좋은 수석 디자이너 중 하나가,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처럼 보이는 그것을, 프리젠테이션 화면에 그럴싸하게 펼쳐 보이는 데 성공했구나 싶었다. 내 주변의 많은 디자이너들이 여기에 미래(라고 읽고 job opportunities라고 읽는다)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갑자기 3D 그래픽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커리어 패스를 틀었다.


Screenshot 2026-01-26 at 10.12.00 PM.png 3D로 만든 에펠탑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퀄리티가 너무 낮고 무용하다며 많은 조롱을 받았던 저커버그. 그는 어릴적 GTA나 콜 오브 듀티를 해봤을까..


“소설이 상상을 던져주고 -> 영화가 시각화하고 -> 기술이 나중에 따라오는” 패턴을 떠올려보자. 보여주기식(performative) 테크놀로지는 사실 기술보다는 영화와 같은 모습을 띄기를 지향한다. 환상을 파는 것이 투자를 유치시키는 것에 실제로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아이언맨>의 자비스가 보여줄 법한, 공간에 떠다니는 유아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것들이 분명 시각적으로 매력적이긴 하지만, 유아이 디자인의 본질인 simplification, 더 정확히 말하면 **intuitivization: 직관화(이건 내가 만든 단어)**와 상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3차원에 배치되어 서로 다른 화각을 만들어내는 인터페이스 패널들이라니..


Screenshot 2026-01-28 at 8.55.52 PM.png 재활용 로켓이 등장했던 소련 영화 The Sky Calls(1959). 거의 모든 신기술은 영화에서 먼저 그려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좀 더 미래적으로 보이도록 겉치장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오늘날의 우리가 이해하기엔 어려워 보이고 복잡해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영화속 공간에서는, 우리가 아는 기술 너머의 기술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일종의 아득함의 미학같은 것을 표현하곤 한다. 그렇게 구현된 가상 공간들은 미래 지향적으로 보이기 위해 ‘복잡함을 더하는 요소들(UI 디자인의 경우, 더 많은 interactive-옵션이 주어질 것 같은 느낌 - 예: 사용자는 저걸 어떻게 다 기억하고 쓸까 싶은 수많은 제스쳐 컨트롤들)을 화려하게 선보여 시각적 충격이라는 목적을 달성해낸다.


반면 그 반대편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자. 초창기 CUI(도스 시대)에서 GUI(윈도우즈) 시대로 넘어갈 때 만들어진 화면이나 아이콘들은 우리 세계를 일일이 묘사하는 것이 아닌 개념의 함축에 초점을 맞춰 탄생했다. (상징-symbol과 함축/암시-implication, 그래픽디자인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


Apple_Macintosh_Desktop.jpg 1984년 애플이 매킨토시 128K와 함께 출시한 첫 매킨토시 운영 체제


예를 들어, 가장 초창기의 휴지통 아이콘은 단지 몇 개의 선으로만 그려졌음에도 휴지통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당시에는 기술적 제약으로 인해 탄생된 미니멀리즘이었지만, 이런 단순화가 크게 변하지 않고 인터페이스 아이콘 디자인 분야에서 오래 이어진 이유에는 그게 인지적(정보 처리적)으로 효율적인 측면이 있어서이다.


garbage.jpg 초창기 애플컴퓨터의 디자이너 수잔 케어의 휴지통 아이콘. 가장 단순화된 휴지통 이미지의 전형. 현재 구글의 머터리얼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있는 휴지통 아이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메타버스의 모순이 드러나는 것이다. 가상공간들은 목적에 따라, 그런 영화적으로 치장된 기술들과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들을 명확하게 구분해 기획되어야 한다. 과부하 걸린 현생도 버거운 우리는 정보 획득의 목적 하에선 복잡한 것보다는 당연히 심플한 환경을 선택하게 되어있다. 심플한 메타버스는 이미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눈 앞에 있다. 많은 심볼/아이콘들이 적절한 위치에 놓여진 2D-베이스 그래픽 패널, 그리고 뒷면과의 구분을 위한 미세한 쉐도우, 두께 처리들 정도만 약간 가미된 가장 효율적 가상세계. 우리는 이 인터넷 공간에서 병원 예약, 은행 업무, 강의 시청 등 실제 세계에서 하던 많은 것들을 이미 수행할 수 있다. 이제 다시 가상공간의 목적을 명확하게 짚어보자. 우리는 3차원 공간을 왜 구현하려고 하는 것인가?


최근 마인크래프트에서 어떤 이들이 무려 5년이란 시간을 쏟아 뉴욕을 1:1 스케일로 구현해냈다는 영상을 보고 메타버스가 빠진 거대한 딜레마 생각이 났다. 물론 마인크래프트는 애초에 환경 구축을 하려는 사람들의 게임이므로 이런 작업이 시간은 걸릴지언정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바깥세상과 똑같은 것을 하나 더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이 다른 모든 이를 위한 메타버스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Screenshot 2026-01-26 at 8.06.08 PM.png 뉴욕의 수많은 건물들을 가상세계에 동일하게 쌓아올린 마인크래프트 팀


우리가 디지털 세상(넓은 개념에서의)에서 추구해온 것이 클릭 한 번이면 닿을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가상세계 속 은행까지 걸어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시공간의 제약 없이 단 0.1초 만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기능적 초월이라면, 이제 메타버스에게 남은 선택지는 비효율 그 자체를 유희로 소비하는 엔터테인먼트(게임)의 영역에 겸허히 머무르는 것 밖에 남지 않는다. 놀이기구 타기처럼 실감나는 재현이 목적이 될 수도 있고, 달리는 뉴욕 지하철위에 올라타기 등 실제로 하기 힘든 것을 가상세계에서 체험해보는 것도 메타버스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혹은 달리는 차 빼앗기, 엘리트 군인이 되어 작전 수행하기는 어떨까.. 응? 잠깐.. 그렇다. 그걸 원하는 수요층에 충실하게 집중하여 만들어진 것이 게임 GTA이고, 콜 오브 듀티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기업과 디자이너들은 이 명백한 귀결을 외면하고 3차원에 집착했을까?


위의 대학원생들이 빠졌던 함정처럼, 달라야 한다거나 새로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은 창작자를 본질보다 형식에 현혹되기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상세계의 본질과 추구해야할 지점은 현실과 거의 유사하거나 완전히 다른 감각적 경험이다. 그 감각적 경험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온 무수한 다른 도구들이 탄생한 맥락ㅡ편의성/효율성의 추구”ㅡ와는 애초에 다른 맥락에서 살펴져야 한다. 메타를 비롯한 많은 AR/VR 회사들이 게이밍이 아닌, 교육용 혹은 업무용 툴을 만들어 크게 확장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이 감각적 경험보다 도구로서의 편의성/효율성을 억지로 어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도구는 3D 공간 자체가 실제로 효율적인 도구가 되는 특수한 경우들이 아니라 인터넷 공간처럼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키는 유니버셜한 도구의 경우를 말함)


감각적 경험의 확장을 위한 미디엄에 불과한 것에 도구의 진보라는 위장막을 씌우려고 하면, 사용자에게 불필요한 노동(friction/머리에 무거운 것 쓰기)을 강요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사용자는 새로운 도구가 실제로 그들에게 의미 있는 효율을 만들어주면, 쓰지 말라고 해도 쓰게 되어있다.)


현대인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거대한 2D 베이스의 가상공간—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고도화된 진보의 산물—에, 얼핏 진보처럼 보이는 것(3-dimensionalize)에 속아 넘어가는 일은 미래기술 투자 과잉의 시대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던 노이즈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수많은 메타버스적 시도들의 종착지가 모두 실패로만 귀결될 것이라고 판단하기엔 이르다. 그 다양한 시도들을 되돌아보고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비판적 사고를 해보기 위한 것이 되었으면 한다. 가상공간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 선점해야 할 제2의 지구나 모든 것을 대체할 만능 도구가 될 수 없다는 명확한 한계를 인지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 본질적 가치는 더욱 선명해질 수가 있다.


정보 과잉 시대에 우리에게 도구로서의 편리함을 주는 것은, 앞으로도 2차원 그래픽으로 명료하게 진보해온(현재의 인터넷 공간과 같은) 모습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 초월적 감각을 선사하는 가상공간이라면 충분히 그것대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본다. 가상공간의 본질이자 나아가야 할 방향이, 감각적 경험으로 하루빨리 귀결되고, 편리한 도구인 척 하기를 그만둬 제대로 된 투자와 실질적 진보를 이뤄내기를 바란다. 설령 메타버스 업계에 예산 삭감이라는 한파가 몰아친다 해도 효율 추구의 세계가 결코 줄 수 없는ㅡ아직 우리가 명확히 알아내지는 못했지만ㅡ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충만함을 줄 수 있는 가상세계의 미래를, 그 업계의 창작자들과 기술자들이 보란 듯이 증명해 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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